수학여행도 동창회도, 자신을 비우려 그 절에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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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 참가자들과 미황사 산책길을 걷던 금강 스님은 “템플스테이의 정수는 ‘새벽’이다. 산의 새들도 새벽이면 일어난다. 그게 자연의 사이클이다. 맑은 자연의 기운과 새벽예불이 만날 때 빚어내는 ‘진짜 사찰 문화’가 새벽에 있다”고 말했다. [해남=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템플스테이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
“앞만 보고 달린 사람들의 쉼표”
외국인도 늘어 올해 벌써 900명
어린이 다도·한문 교육도 인기

 땅끝마을인 전남 해남의 미황사에는 반별 수학여행을 오는 중·고생도 있다. 여름에는 홍콩에서 근무하는 비즈니스맨들이 비행기를 타고 5박6일 간 찾아오는 휴가지다. 또 여고 동창모임을 미황사에서 1박2일 템플스테이로 갖기도 한다. 해외교포들이 찾아와 고향 대신 산사에 머문다. 올해 미황사에서 묵었던 외국인만 무려 900명이 넘는다.

 18~19일 가을비에 흠뻑 젖은 미황사에서 주지 금강(49) 스님을 만났다. 그는 한국 템플스테이의 산 역사다. 조계종의 일감·주경·법인 스님 등과 함께 개척자로 꼽힌다. 금강 스님은 ‘템플스테이’란 용어가 생기기 전부터 산사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에게 ‘템플스테이의 진화’에 대해서 물었다.

 - 사람들은 왜 산사에서 묵고 싶어 하나.

 “1266년 전에 인도 우전국이란 나라에서 불상과 경전 등을 실은 배가 땅끝마을 사자포구에 도착했다는 일화가 내려온다. 그걸 모신 사찰이 미황사다. 뒷산의 이름도 달마산이다. 그때부터 1000년 넘게 미황사는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전했다. 현대인들이 산사에 묵고 싶은 이유도 결국 ‘행복하고 싶어서’다.”

 - 산사에 묵는 게 왜 행복인가.

 “현대인은 무한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앞만 보고 달린다. 산사를 찾아가 하룻밤 묵는 건 자신을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가. 거기에 행복의 단초가 있다.”

 - 자신을 떠나보면 무엇을 찾게 되나.

 “자신을 떠나는 건 자기 익숙함으로부터 떠남이다. 익숙함을 떠날 때 비로소 새로움을 만난다. 뭔가 새로울 때 우리는 행복함을 느낀다. 사람들은 투덜댄다. 일상이 지겹다고. 만나는 사람도 너무 익숙하다고. 그런데 떠나봐야 안다. 우리의 일상이 날마다 날마다 빚어지는 놀라운 새로움이라는 걸 말이다.”

 금강 스님은 2000년부터 미황사 주지를 맡았다. 그는 고민했다. “사찰의 역할이 뭘까. 지역 사람들을 위한 공간에 머물 건가, 아니면 사람들이 쉬고 힘을 얻어가는 공간으로 만들 건가.” 후자를 택했다. 스님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문학당’부터 열었다. 여름방학 때 7박8일 간 다도(茶道)와 한문을 가르쳤다. 이듬해 반응은 놀라웠다. 32명 모집에 100명 넘게 지원을 했다. 입소문이 난 것이다. “콘크리트 속에서 사는 아이들은 자연을 간접경험할 때가 많다. 그런데 산사에 오면 모든 게 실제다. 에어컨 바람보다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더 시원하고, 좋아하는 가요보다 새 소리가 더 아름답고, 그 어떤 영화보다 세상을 온통 물들이는 저녁 노을이 더 감동적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걸 통해서 아이들의 감각이 깨어나더라.”

 ‘템플스테이’란 용어는 2002년 월드컵 때 처음 생겨났다. 당시 33개 사찰이 템플스테이 운영사찰로 지정됐다. 지금은 122곳에 달한다. 지난해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순인원은 143만여 명(외국인 18만9000명 포함). 올해는 10월까지 전년 대비 내국인 11%, 외국인 15%가 증가했다. 갈수록 인기다. “요즘은 해외 대학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교수들이 외국인 교수와 학생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아주 고급스러운 방법이 템플스테이다.”

 - 템플스테이는 앞으로 어떻게 진화해야 하나.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 저성장 사회가 되면서 사람들은 상대적 빈곤감과 좌절감, 개인적 상처에 허덕인다. 그걸 극복하는 수행과 지혜가 필요하다. 그걸 채워줘야 한다. 사찰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사찰이 스님만을 위한 수행 공간이 아니라 일반인도 와서 수행하고 비우고 가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해남=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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