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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문 미 시먼즈여대교수·철학|동양계 미국인빛볼날멀지않다 인구1·5%…박사 6%차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얼마전 주간 「타임」이 미국내 아시아인에 대한 특집을 냈었고 뒤이어 주간 「뉴스위크」가 미국 안의 아시아계 학생들에 대한 특별기사를 실었다.
일본에 대한 기사는 두말할 것 없고 급속도의 경제성장을 보여주는 「4인조 경제깡패」의 나라라고 불려지는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에 대한 기사와 더불어 최근 자유경제체제로 급회전하는 중공에 대한 기사가 신문·잡지에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수많은 세미나에서 토론의 대상이 되고있다.
엊그제 보스턴의 유력한 일간지는 각 대학에서의 아시아계 학생들의 놀라운 우수성을 보도함과 아울러 그에 따른 은근한 저항과 반발이 나타나고 있음도 지적하고있다.
이러한 사실은 세계 무대에서, 특히 미국 내에서의 아시아인의 눈부신 진출을 의미하며 미국이 단일민족이 아니라 다수민족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음을 새삼스럽게 상기시킨다.
거의 기독교계 백인들에게만 열렸던 이민의 문이 19세기말. 그리고 20세기초에 유대인들에게도 열려 특히 동구라파에서 수백만의 유대계인들이 미국인으로서 들어왔다.
60년 중반에는 아시아인에게는 굳게 닫혔던 이민의 문이 크게 열려 중국인·필리핀인·한국인들이 적지않게 미국으로 이주하게됐다.
월남전이후에는 몇십만 명씩 베트남인·캄보디아인·라오스인들이 별안간 미국의 각 도시에 정착하게 됐다.
몇 년 전만 해도 별로 눈에 띄지 않던 아시아계인들을 보스턴시에서만도 어디서나 만나게됐다.
「와스프」(WASP)라는 낱말은 미국사회의 한 측면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개념의 하나로 되어왔다.
그것은 화이트 (white) ,앵글로색슨 (anglo-saxon), 프로테스턴트, 즉 신교파기독교인의 약자다.
이것은 인종적 개념이며 주로 신교도인 북구라파, 영국계의 인종을 지칭한다.
인종적 개념이 각별히 미국을 설명하는 열쇠가 될 수 있는 까닭은 이 사회가 단일민족으로 되지 않고 다양한 인종에 의해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황무지 미국의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청교도들이「와스프」였다.
그들의 후예들이 개척한 미국에서 「와스프」 가 절대적인 지배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와스프」 는 미국의 주인임을 자처했고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군림해 왔었다.
이런 점에서 60년대에서야 미국의 전통을 깨뜨리고 가톨릭, 즉 구교도로서 앵글로색슨이 아닌 아일랜드계 「케네디」가 대통령이 됐었다는 사실이 미국사회학적으로 중요한 뜻을 갖게되는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와스프」의 사회적 특권이 차차 허물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유대계인들이 차별대우에서 벗어나고 그들의 후예들은 현재 학계·예술계·언론계·경제계에서 거의 절대적인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
이탈리아계 여성 「페라로」가 부통령후보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 미국의 2, 3대 도시 LA와 시카고를 비롯한 많은 도시의시장이 흑인이라는 사실은 20년 전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그 만큼 인종적·종교적 세력으로 본 미국의 사회구조는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다.
미국은 이미 「와스프」의 소유가 아니며 「와스프」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없게 변화했다.
최근 남미, 특히 멕시코에서 국경을 숨어 넘어오는 불법 입주자들이 급속도로 늘어 1년에 몇백만의 수에 달한다고 추측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남미계 이민들의 수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숫자에 해당되나 10여년 전부터 아시아에서 수많은 이민이 들어와 이제는 적지 않은 수의 아시아계인이 미국사회의 한 구성요인이 되게되었다.
여러 인종 가운데서 아시아계가 빛을 내고있다는 사실은 통계를 통해서 입증된다.
인구의 1.5%에 해당하지만 아시아인들이 미국 과학분야 박사학위의 6%를 차지하고있다.
웨스팅하우스사에서 매년 뽑는 가장 우수한 고교자연과학계 학생들의 40명중에서 80년에는 12명, 84년에는 10명이 아시아계였다.
최근 각1류 대학교 재학생 수의 8∼10%, 때로는 20%까지 아시아계가 차지하게 되었다.
아시아계 학생들이 그만큼 우수함을 말해준다.
대부분 이민2세가 겨우 이제 대학에 들어가기 시작한 아시아계는 미국전체의 차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그러나 각 대학에서 우수한 아시아계의 젊은이들이 활동하게될 늦어도 20년 후에는 동양인들이 각분야, 특히 자연과학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한국인의 이름을 신문·잡지에서 자주 접하게 되리라고 예측된다.
비앵글로색슨계 백인들이 활동하기 시작함에 따라 「와스프」의 압도적 세력은 이미 빛을 잃고 흑인들의 급격한 사회적 진출과 막대한 남미계 인종들의 끊임없는 인구이동에 따라 미국의 인종적 분포는 순수한 백인위주의 사회에서 비백인사회로 변형하지 않을 수 없게됐다.
최근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의 이민과 우수한 그들의 2세를 관찰할 때 20년, 30년 후에는 비서양적 요소가, 건국이후 오늘날까지 완전히 지배했던 서양적인 미국 문화에 들어오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비서구문화권이과격한 서구적 영향을 싫든 좋든 받아 변모하고 있다면 서양사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양적 영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그러한 영향은 더욱 커 갈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사실은 동양계가 적지 않은 미국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현재 동양계가 두드러지는 것은 대학생가운데서이며 그 우수성도 특히 과학계에 제한되어있다. 그러나 참담게 더깊이 미국사회에 참여하고 그것을 대변하려면 동양계인들은 과학자 뿐만 아니라 시인·작가·기자·역사학자·사회운동자·철학자들을 많이 배출함으로써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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