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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대도무문, 고속도로엔 톨게이트 없다” 통역했더니 웃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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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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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가 1993년 7월 한국을 방문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에게 ‘대도무문’ 휘호를 써 주고 있다.

YS는 단답형 말투와 빙빙 돌리지 않고 핵심을 찌르는 문장을 구사하곤 했다. 김영삼 정부 5년간 청와대에서 영어 통역을 맡은 박진 전 의원이 22일 정상회담 중 일화들을 전했다. 1993년 7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첫 정상회담차 한국을 찾았을 때 YS는 좌우명인 ‘대도무문(大道無門)’을 붓글씨로 직접 써서 선물했다. 클린턴이 의미를 물었을 때 박 전 의원은 “정의로움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Righteousness overcomes all obstacles)”고 설명했다. 클린턴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 갸우뚱하자 박 전 의원은 “대도에는 문이 없다(A high street has no main gate)” “고속도로에는 요금정산소가 없다(A freeway has no tollgate)”고 덧붙였다. 클린턴은 그제야 손뼉을 쳤다고 한다.

YS 통역관 지낸 박진 전 의원
클린턴과 재회 땐 “Who are you”
“이게 누꼬” 경상도식 인사라 설명

 93년 11월 23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한 YS와 클린턴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미측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허용하면 즉각 팀스피리트훈련 중단을 표명하는 등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YS는 “우짰든 남북한 상호 사찰이 먼저”라고 버텼다. 경상도 사투리인 ‘우짰든’은 직역하면 ‘anyway’지만 박 전 의원은 ‘In conclusion(결론적으로)’으로 전달했다. 이듬해인 94년 북핵 문제로 두 정상 간 날 선 전화통화가 이어졌다. YS는 “이게 무슨 동맹이란 말이가”라고 일갈했다. 박 전 의원은 이를 “어떻게 건전한 동맹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How can we describe our relationship as a sound relationship)”로 바꿔서 전달했다고 한다.

 YS가 오랜만에 만난 클린턴에게 “후 아 유(Who are you)”라는 인사를 건넸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박 전 의원이 “왜 그런 인사를 했느냐”고 묻자 YS는 “경상도에서는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이게 누꼬(Who are you)’라고 한데이”라고 했다고 한다.

 95년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YS는 일본 정치인들의 거듭된 과거사 망언과 관련해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강경한 발언을 내놨다. 이 발언은 “일본의 나쁜 습관을 고치겠다”로 번역, 일본 기자들에게 전달됐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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