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G보다 20배 빠른 속도 … 2020년 570조원 시장 열린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54호 18면

‘전화가 왔나 보다. 오른팔에 찬 웨어러블 스마트 기기에서 파란색 센서가 깜박인다. “통화”라고 말하자 아내의 홀로그램이 눈앞에 뜬다. 아내에게 “감기 기운이 있다”고 말하자 웨어러블 기기는 인근 병원을 검색해 진료 시간을 예약한다. 예약 정보는 자동차로 전송된다. 운전석에 앉자 차 앞유리에 뜬 내비게이션이 병원을 목적지로 설정하고 자율 주행을 시작한다. 퇴근길 백화점에 들러 아내에게 선물할 옷을 고른다. 어떤 옷이 어울릴까. 고르는 옷마다 아내의 홀로그램이 입고 나타난다. 빨간 색 원피스를 선택하고 터치 한번으로 결제를 마친다. 귀가 길, 내비게이션의 주행 정보는 집안의 스마트 가전들과 공유된다. 집 도착 시각에 맞춰 가전제품들이 작동을 시작한다. 현관문을 열자 전기밥솥에선 김이 모락모락 난다….’

SK텔레콤이 지난달 5G 글로벌 혁신센터 개소식에서 선보인 가상현실 체험 기기. [뉴시스]

섬마을 어린이, 증강현실 교실에서 수업 2020년 5세대(5G) 이동통신이 상용화한 이후 펼쳐질 세상이다. 5G에서는 4G LTE보다 데이터 전송속도가 20배 이상 빠르고 네트워크에서의 데이터 처리 용량은 1000배가량 늘어난다. 18GB 초고화질(UHD) 영화 한 편을 내려받는데 7.5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간단히 주고받을 수 있게 되면서 5G 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연결돼 데이터를 주고받는 초연결사회로의 진화를 예고하고 있다. KT 융합기술원 인프라연구소 5G TF 김하성 책임연구원은 “통신 기술에서 속도는 곧 용량을 의미한다”며 “1~4세대까지의 통신기술은 모바일기기나 컴퓨터 같은 기계를 인간과 좀 더 빠르게 연결하는데 주로 쓰였지만 5G 세상에서는 기계끼리 대용량 데이터를 주고받는 게 가능해지면서 공상과학영화에서나 가능했던 일들이 하나 둘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망(네트워크)과 망을 이용하는 기기(디바이스)는 서로 영향을 끼치며 발전한다. 2000년대 중반 3G 망이 처음 구축됐을 때 스마트폰의 등장을 예상한 통신사업자는 없었다. 스티브 잡스처럼 창의적 사고를 가진 인물이 3G 망의 속도로 작동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제품을 내놓았다. 스마트폰이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이번엔 통신사업자들이 스마트폰을 보다 용이하게 쓸 수 있는 4G 망 기술을 개발했다. 5G 시대가 가져올 변화상을 미리 다 예측하기는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떤 혁신적 아이디어가 통신망 기술과 접목될지 알기는 어렵다. 다만 통신전문가들은 대용량 데이터 통신시대가 가져올 초연결성이 개인 삶뿐 아니라 도시관리, 공장관리, 재난 대응, 학교 교육 같은 사회 전분야에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한다. 이를테면 교통사고 현장에 의료진이 도착하지 못해도 응급처치가 가능하다. 구급대원이 머리에 쓴 웨어러블 기기로 환자의 상태를 관찰하면 이 장면을 의사가 병원에서 보면서 도움을 줄 수 있다. 구급대원의 눈 앞에 특정 신체 부위를 홀로그램으로 띄워놓고 원격에서 가르치면서 응급조치를 지시할 수 있다. 이 홀로그램이 바로 5G 통신망을 타고 전달되는 데이터다. 홀로그램처럼 용량이 큰 데이터는 현재 상용기술이 나오지 않았지만 나온다 해도 4G의 속도로는 상대방에게 도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실시간 응급처치에 쓸 수 없다. 로봇 기술 역시 비약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5G 시대에서는 빅데이터를 초고속으로 분석해 인간의 눈에는 개별적인 지능을 갖춘 것처럼 느껴지는 로봇이 인간의 일상생활을 도울 수 있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하인 로봇’이 날씨정보를 바탕으로 “우산 가져가세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


도서지방 어린이들은 도시 학교의 교실 안에 같이 있는 것처럼 수업을 할 수 있다. 학생들 홀로그램이 책상에 앉아 있고 실제 학생은 그렇게 구현된 증강현실 교실에서 수업을 받는 일이 가능하다. 증강현실은 가상현실에 실제 상황을 결합하는 것을 뜻하는데 모두 엄청난 양의 데이터 전송을 전제로 가능하다. 김하성 책임연구원은 “5G 기술 혁명의 핵심이 될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사용자가 조합된 데이터들이 제공하는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5G 시대가 산업간 경계를 없애는 신(新) 산업혁명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한다. 차량 주행·정비 시스템은 보험 상품을 자동 안내하고 교통 제어까지 주고받는 커넥티드 차량으로 진화할 수 있다. 자동차 제조업이 보험업·정비업과 결합하는 것이다. 공장은 에너지 절감, 탄소 배출 규제, 위험물 누출 방지 등을 자동화하고 건물·설비의 관리 시스템과 일체화된다. 김하성 책임은 “기계와 기계가 바로 데이터를 주고 받는 시대가 되면 인간이 쓰는 모든 물품이 디바이스가 되고 디스플레이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5G 기술의 국제 표준 논의는 내년 초 본격화될 전망이다. 통신 기술 선진국 간에는 기술 표준을 주도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020년부터 6년간 5G 시대가 열리면서 통신기계와 장비 부문에서 476조원, 통신서비스 부문에서 94조원 시장이 열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통신산업은 특성상 표준을 기반으로 한다. 호환이 돼야 국가간, 기기간 연결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표준이 만들어지면 전세계 통신사업자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다. 표준기술을 주도하게 되면 특허료수입이 꾸준히 발생할 뿐만 아니라 망 구축과 운용에서도 유리하고 관련 기술, 부가 서비스 개발도 쉬워진다. 전세계 이동통신사나 통신장비업체들이 자신이 보유한 기술을 표준화에 최대한 포함하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평창올림픽 계기로 표준 선점 계획물밑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지난 3월 세계 최대 정보통신 박람회 ‘세빗(CeBIT) 2014’ 개막식에서는 영국의 제임스 캐머런 총리가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만나 양국 간 5G 기술 개발과 사물인터넷 분야 협력에 합의했다. 영국정부는 사물인터넷 기술 개발에 4500만 파운드(약 801억원)를 투입하고 100만 파운드 규모의 기금을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 유럽연합(EU)은 5G 연구재단을 설립하고 올해부터 오는 2020년까지 2조4000억원을 원천연구에 투자할 계획이다. 중국도 다크호스다. 세계 통신장비시장 1위인 화웨이는 향후 5년간 6억 달러(약 6397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우리 정부도 ‘세상에서 가장 앞선 5G 모바일 강국’을 모토로 내걸었다. 2020년까지 민관 공동으로 1조 6000억 원을 투입해 국제표준화, 모바일 홀로그램 서비스 등에 대응할 계획이다. KT는 2018년 평창올림픽 중계에서 5G 기술 일부를 선보여 표준화를 선점할 계획이다. SK텔레콤도 지난달 경기도 성남에 ‘5G글로벌 혁신센터’를 열고 관련 기술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SK텔레콤 최진성 종합기술원장은 “5G 표준화 작업을 한국이 주도하면 IT 강국 위상을 독보적으로 구축할 수 있게 되고 후방산업에도 영향을 끼쳐 전체 경제에 활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