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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처럼 삼촌처럼 … 한국식 레슨이 여자골프 키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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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호 23면

1 박인비는 남기협(왼쪽) 코치와 지난해 10월 결혼에 골인했다.


한국 여자골프가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골프 한류’ 가 한창이다. 한국이 여자골프 최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숨은 공신 중 하나는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사부(師父)들이다. 선진 골프를 접한 코치에서부터 자신의 경험을 체화한 선수 출신까지 다양한 이력을 지닌 이들의 ‘열정 레슨’이 선수들의 실력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


한국의 유명 코치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레슨 노하우를 갖고 있다. 미국이 ‘포인트 레슨’을 한다면 한국은 ‘24시간 밀착 레슨’을 한다. 선수들 곁에서 종일 함께 호흡하며 ‘아빠’ 혹은 ‘삼촌’의 역할까지 마다 않는다.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만큼 코치들의 생존 전략도 과학적이고 정밀해지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최근에는 외국의 여자골퍼가 한국으로 유학을 오기도 한다.


박인비에게 느린 스윙 전수한 임진한 박인비(27·KB금융)는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임진한(58) 프로의 제자다. 남편이자 스윙코치인 남기협(34) 프로도 2006년 임진한골프아카데미에서 만났다. 미국에 살았던 박인비는 임진한골프아카데미의 전지훈련에 합류하는 등 고교생 때 임 프로에게 레슨을 받고 기본기를 다졌다. 중3 때부터 임 프로의 지도를 받은 남편이 스윙 코치를 전담하면서 박인비는 ‘골프 여제’로 성장했다. 박인비는 임 프로에게 배운 남편의 도움으로 특유의 ‘느린 템포 스윙’을 완성했고, 들쭉날쭉한 샷을 바로 잡으면서 LPGA 투어에서 승승장구했다. 박인비는 올 시즌 리디아 고(18·캘러웨이)와 올해의 선수, 최저타수상(베어트로피), 상금왕을 두고 시즌 최종전인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2 전인지와 박원(왼쪽) 코치.

최근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이는 전인지(21·하이트진로)의 스승인 박원(49) 코치다. 박원 골프아카데미 원장으로 2003년부터 선수들을 지도하기 시작한 그는 올해 전인지를 세계적인 스타로 키웠다. 박 원장은 미국 미시건 주립대 환경경영 박사 출신이다. 선수 출신의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멤버도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클래스A 멤버도 아니지만 이론가로서 조예가 깊다.


박원 코치는 4년 전 전인지를 만났다. 당시 국내 여자투어에 갓 프로로 데뷔한 그를 대스타로 길러내면서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유학 시절 골프를 독학으로 배웠던 그는 전공 서적보다 골프 책을 더 많이 읽으며 이론을 파고들었다. 방송해설을 통해 골프계에 들어왔고, 입소문이 나면서 2003년부터 선수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박 원장은 세계 최강이 된 여자골프의 원동력으로 치열한 경쟁을 꼽았다. 그는 “외국과 달리 한국은 어릴 때부터 프로처럼 훈련하고, 온 가족이 선수를 단련시키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선수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성공과 실패를 많이 해봐야 좋은 지도자”라며 “미국에서도 4~5년 전부터 한국 골프 교습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대만과 일본에서 골프유학을 오고 있다”고 했다.


박 원장은 ‘즐기는 골프’를 종착점으로 본다. 골프의 이론을 이해하고 습득한 뒤 즐기는 단계로 넘어가야만 한계를 깰 수 있다는 지론이다. 호기심이 많은 전인지도 즐기는 골프에 눈을 뜨면서 올해 US여자오픈과 일본여자오픈을 석권했다.

3 김효주와 한연희(오른쪽) 코치. [중앙포토]

김효주 강한 멘탈은 한연희 코치 덕한국여자골프 국가대표팀을 맡았던 한연희(55) YG엔터테인먼트 골프 아카데미 감독도 한국을 대표하는 교습가 중 한 명이다. 김효주(20·롯데)의 스승으로 유명한 그는 KPGA 정회원이자 선수 출신이다.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투어 생활을 일찌감치 접었지만 후배들을 키워내는 재능이 남달랐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여자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2006년과 2010년 아시안 게임에서 2회 연속로 전 종목(남녀 개인·단체) 석권을 이끌어냈다. 그 공로로 2011년 체육훈장 맹호장도 받았다.


한 감독은 ‘인성이 중요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는 “골프는 신사 스포츠다. 정신적인 요소가 강하다. 인성적으로 미숙하고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2006년 인연을 맺은 김효주도 스승의 지도철학 덕분에 멘털이 강한 편이다.


20년 전만 해도 한국 골프는 일본에 뒤처졌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최강으로 성장했다. 조기교육과 프로의식이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감독은 “한국 선수들은 어렸을 때부터 골프를 직업으로 생각한다. 프로의 마인드로 접근하고 훈련한다”고 진단했다.


이론·실전 갖춘 장재식의 족집게 레슨 KPGA 정회원이자 PGA 클래스A 멤버인 장재식(34) 프로도 비슷한 말을 했다. 최운정(25·볼빅)을 키워낸 그는 “일본은 취미로 골프를 시작하지만 한국은 직업으로 여긴다. 그렇다 보니 훈련량도 월등히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성인 프로골퍼 못지 않은 빼어난 스윙을 가진 주니어 선수들이 많다. LPGA 투어에서도 박희영(28·하나금융)과 최나연(28·SK텔레콤)의 샷은 ‘교과서 스윙’으로 정평이 나있다. 장 프로는 “일본 선수들은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다보니 스윙이 제각각이다. 개성이 있다는 뜻이지만 기본적인 토대가 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2003년 국내 챌린지 투어(2부)에선 잠깐 뛴 경력이 있는 장 프로는 이론과 실전을 겸비한 경우다. 그는 롱게임은 분석 위주로, 쇼트게임은 감각 중심으로 지도한다. 그는 “이론가는 선수들이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잘한다. 선수 출신은 자신의 경험과 기술적인 면을 부각시켜는 강점이 있다”고 했다.


미국의 마이크 벤더 골프아카데미에서 선진 교습법을 익힌 장 프로는 ‘선수는 골프를 사랑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하다. 부모의 권유로 시작해도 골프를 사랑하지 않으면 롱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최근 은퇴한 서희경(29)과 군입대한 배상문(29) 등을 키운 고덕호(53) 프로도 실력가다. 미국 PGA 클래스A 멤버인 그는 ‘스스로 이해하는 골프’를 내세워 ‘고덕호 사단’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톱프로를 배출했다.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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