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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세상] 불거진 방송개혁 글로벌 원칙 따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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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잠잠했던 방송 개혁에 대한 담론이 다시 불붙고 있다.

한나라당은 최근 KBS2.MBC의 민영화와 신문.지상파 방송의 겸영 금지 철폐 등을 골자로 한 방송개혁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과 방송사 노조들은 '방송사 길들이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반발에는 기존 지상파 방송의 집단이기주의적 반응도 포함돼 있지만 한나라당 자신의 주장에도 방향착오적 내용이 담겨 있다.

많은 사람이 한나라당의 방송개혁안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일관성을 잃은 과거의 태도다. 2002년 6월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은 이미 MBC.KBS2의 민영화를 포함한 방송개혁안을 발표한 적이 있다.

지방선거와 곧이어 실시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압승을 거뒀다. 이처럼 정국이 유리한 국면으로 흐르자 슬그머니 대선 공약에서 방송개혁안을 빼버렸다. 차기 집권이 확실한 마당에 굳이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설명이었다.

둘째는 MBC.YTN의 감사원 감사와 KBS 시청료 폐지 등 개혁안 자체에 문제가 있다. MBC를 민영화하면 그만이지 무슨 감사원 감사가 필요한가. 영국의 BBC, 일본의 NHK, 독일의 ARD 등 국가 기간방송이자 공영방송에 대해 해당 국가 정부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따라서 KBS 시청료 폐지는 그야말로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이 진심으로 방송 개혁을 원한다면 먼저 1990년대 초 신군부의 잘못된 방송정책을 원위치시키는 일부터 착수해야 할 것이다. 당시 방송의 국영화와 신문.방송의 겸영 금지는 신군부의 언론 통제용 조치였다. 한나라당은 이 같은 잘못된 유산을 먼저 청산하는 것이 일의 순서일 것이다.

세계는 지금 디지털 기술의 혁명으로 신문.방송.통신의 융합이 이뤄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ㆍ디지털멀티미디어센터(DMC) 등 새로운 미디어와 사업 형태들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사업들을 준비하고 있으나 실정법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WTO 체제 출범과 뉴라운드 협상으로 국가 간의 장벽이 무너지면서 선진국들은 자국 미디어 기업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있다. 방송의 민영화와 탈규제가 대표적인 예다.

한나라당은 이 같은 세계 경향에 맞추어 방송 개혁의 논리와 내용을 발표해야 설득력이 있다. 정권의 영향력 하에 있는 KBS2.MBC.EBS.YTN.아리랑채널.K-TV 등의 정치적 독립과 이를 위한 소유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도 정권과 언론의 관계는 '긴장관계가 바람직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한 국가가 사용 가능한 아날로그 지상파 채널 여섯 개 중 다섯개를 정권이 쥐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방송 개혁을 두고 정치적 공세나 무책임한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나라당은 세계적인 미디어 변화 추세에 발맞춰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어떤 한국 방송 지형이 바람직한지를 진지하게 고민한 다음 정책을 내놓고 추진하길 바란다.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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