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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권 화해 정책 펴 통독 가교 역할 … 슈미트 옛 서독 총리 97세로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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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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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6월 30일 소련 모스크바 크렘린궁을 방문한 헬무트 슈미트 서독 총리(왼쪽)와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소련 서기장(오른쪽). [중앙포토]

독일 라인강의 기적을 가능케 한 재무 장관. 독일 통일의 주춧돌을 놓은 총리인 빌리 브란트와 통일 주역인 헬무트 콜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한 서독 총리. 헬무트 하인리히 발데마르 슈미트가 10일(현지시간) 별세했다. 97세.

고인은 함부르크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에 육군으로 참전했다. 전쟁 후엔 독일 사회민주당(SPD)에 입당했으며 함부르크 자치정부의 경제부와 교통부에서 일했다. 의원 배지를 단 건 1953년으로 연방하원 의원으로 선출되면서다. 68년 SPD 부의장이 됐다가 동방 정책으로 유명한 빌리 브란트 내각에서 국방장관(69~72년), 재무장관(72~74년)을 지냈다. 당시 독일의 경제를 일으켜 세운 경제 정책으로 정평이 났다.

 고인은 브란트 총리의 사임 후 자유민주당과 연정, 74년 총리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격변기였다.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 위기에다 극좌 세력인 적군파(RAF)가 독일 사회를 테러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는 격랑을 헤쳐가며 독일의 현대적 시스템을 정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외교적으론 미국과 협력을 유지하면서 동구권 국가들과 화해를 추구했다. 사회복지 재정 삭감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연정이 붕괴하면서 82년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고인은 이후 주간지 발행인이 됐다. 늘 현안에 대해 ‘지혜’를 보태곤 했다. 가장 사랑 받는 전직 총리이기도 했다. 93세 때인 2011년 SPD 전당대회에서 그리스에 대한 재정 위기를 망설이는 당원들을 설득한 일도 있다.

 미국 외교계의 거두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는 키신저 전 장관이 “헬무트 슈미트보다 먼저 죽고 싶다. 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 일이 있을 정도로 가깝게 교유했다.

 고인은 평생 골초로 유명했다. 4월 1시간 13분57초 동안의 TV 인터뷰에서 담배 10개비를 피웠다. 그는 당일 “100세까지 살겠다는 생각이 없지만, 그 나이까지 살고 말고를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노릇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의 ‘바람’대로 됐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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