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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나는 국내 최고의 인명구조견입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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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중이와 김용덕 소방위는 눈빛만 봐도 통할 정도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사진 부산소방안전본부]

사람들은 나를 ‘국내 최고의 인명구조견’이라 부른다. 각종 사건·사고 현장에서 수많은 목숨을 구한 덕분에 붙여진 수식어다. 그런 나에게도 안타까운 순간이 있었다. 지난해 2월 17일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가 대표적이다.

그날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파트너인 김용덕(42) 소방위가 황급히 달려왔다. 그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한 걸 보고 “큰 사건이 터졌구나”라고 직감했다.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아비규환이었다. 무너진 체육관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다음날까지 구조물의 작은 구멍을 드나들며 쉴 새 없이 실종자를 찾았다. 하지만 생존자는 끝내 못찾고 차가운 시신 1구만 수습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구조견 생활에서 가장 아쉬울 때가 이런 때다. 구조견은 후각으로 실종자를 찾는다. 그래서 사고가 발생하면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서 실종자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람들의 수색이 끝난 뒤 구조견이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사람의 냄새가 뒤섞여 실종자 수색이 쉽지 않다.

내 이름은 ‘세중’이다. 부산소방안전본부 특수구조단 소속이다. 세퍼트 종으로 9살이다. 사람으로 치면 60대다. 2011년 10월 28일 현 근무지로 와 핸들러(개를 훈련시키는 사람)인 김 소방위와 팀을 이룬 지 10일로 꼭 1475일째다. 총 277차례 출동해 20명의 생명을 구했고 8명의 사체를 수습했다.

사람보다 1만 배 이상 발달한 후각과 40배 이상 발달한 청각이 있어 가능했다. 후각과 청각은 내가 가진 유일한 수색장비이기도 하다. 나는 빠른 스피드가 주특기다. 산악 수색은 전국 22마리 구조견 중 으뜸이다. 전국 인명구조견 운영기관 평가에서 2011~2015년 5년 연속 수상했고 전국 인명구조견 대회에서 각종 상도 휩쓸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우등생은 아니었다. 오히려 구조견 시험에서 세 번이나 탈락한 낙제생이었다. 같은 날 태어난 삼형제가 모두 두 살 때 구조견이 됐지만 나는 연거푸 낙방했다. 그러다 2011년 5월 국민안전처 인명구조견 센터에서 첫 졸업생으로 구조견이 됐다. 나를 기억하던 사람들은 “그 때 그 세중이가 맞냐”며 놀라워했다. 본성을 억누르고 핸들러의 지시에 따라 부단히 노력한 결과였다.

구조견의 삶은 배고픔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나는 하루 500g의 사료만 먹었다. 사람으로 치면 밥 한 공기 정도다. 날렵한 몸놀림을 위해 30~31㎏의 몸무게를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서다. 식사 후 곧바로 달리면 위가 뒤틀려 죽을 수 있어 언제 출동을 나갈지 모르는 나는 배불리 먹을 수 없었다.

출동을 나가면 기본이 2~3일, 길게는 1주일간 수색에 참여한다. 고생 끝에 실종자를 찾았는데 숨져 있으면 허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한 건 생존자를 발견했을 때의 보람 때문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컸다.

하지만 나는 특수구조단에 함께 왔던 천둥(7·골든 레트리버)이에게 수색 에이스 자리를 맡기고 이달 말 은퇴한다. 아직 마음은 현장을 누비고 싶지만 나이를 고려해 새 주인에게 보내지게 됐다. 5년간 팀을 이뤘던 김 소방위는 말했다. “너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은퇴 선물은 너의 명성을 후배들이 다시 이어가도록 하는 거야. 핸들러는 구조견들의 명성과 자존심을 지켜주는 사람이니까. 국내 최고인 너를 만나 정말 행복했다.”

유명한 기자 famo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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