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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홍보 노린 ‘I.SEOUL.U’ 정작 외국인들은 고개 갸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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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호 10면

당신에게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서울시가 지난달 28일 답을 내놓았다. 서울의 새 브랜드인 ‘아이서울유(I.SEOUL.U)’를 발표한 것이다. 2002년 ‘하이서울(Hi Seoul)’이 만들어진 후 13년 만이다. 올해 7월부터 두 달간 진행된 ‘서울 브랜드 아이디어 공모전’ 결과 1만614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결과물이다. 시민들이 참여한 천인회의(시민 1140명, 전문가 9명)를 거쳐 최종 결정했다. 서울을 영어의 동사처럼 ‘서울하다’로 사용해 문장을 만들었다는 게 서울시 설명이다. ‘서울은 나(I)와 당신(U) 사이에 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시민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설명을 들으면 뜻이 괜찮고 이해가 되지만 문구 자체만으론 무슨 말인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서울이 어떤 도시라는 정체성은 둘째치고 서울이 나와 당신 사이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의미인지, 혹은 어떻게 존재할 것이라는 지향점이 뭔지가 잘 와 닿지 않는다는 주장이 많다.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새 브랜드를 알리는 노이즈 마케팅에 성공했다’는 긍정적 시각도 있지만, 전문가들과 상당수 시민은 ‘부끄럽다’ ‘와 닿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갓 세상에 나온 ‘I.SEOUL.U’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서울은 나와 당신 사이에 존재하게 될까. 


“홈페이지 클릭해야 뜻 이해”영어 브랜드는 주요 타깃이 외국인이다. 국내에 오래 거주해 한국의 문화와 서울에 대한 이해가 깊은 외국인들은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앙SUNDAY가 직접 외국 현지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헷갈린다고 했다.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로버트 브라이언(37·회사원)은 “소리만 들어서는 ‘내가 너의 영혼을 빼앗는다(I soul you)’는 이상한 개그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나는 너를 보았다(I saw you)”거나 “내가 너를 팔았어(I sold you)”로 들린다는 반응도 나왔다.


단순히 소리만 듣고 브랜드를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외국인들에게 I.SEOUL.U의 뜻과 의미를 설명해줬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페인 알칼라 대학교에 다니는 다니엘 미테(24·스페인)는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하다’는 표현은 좀 억지스럽다”며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기보다 있는 단어로 더 명료하게 표현하는 게 이해하기 쉽지 않겠나”고 말했다.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 거주하는 엘리자베스 로셀리니(42·여·주부)는 “‘I.SEOUL.U’ 문장을 보고 난 후에도 이해하는 외국인은 얼마 없을 것”이라며 “결국은 웹사이트를 찾아가야만 뜻을 알 수 있는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여론도 일단은 싸늘하다. 당장 박원순 서울시장의 소속 정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부터 혹평이 나온다. 새정치연합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차라리 브랜드 없이 지내라. 대한민국 디자이너로서 저는 솔직히 부끄럽다”며 “단어들을 억지스럽게 나열해 쉬운 단어인데도 무슨 뜻인지 헷갈리게 돼 있다”고 꼬집었다. 손 위원장은 ‘참이슬’ ‘처음처럼’ 등을 만든 광고계의 대표적인 브랜드 전문가다.


국민의 인식은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4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I.SEOUL.U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54.7%, ‘찬성’은 11.9%에 불과했다. 반대하는 시민 중 ‘하이서울’을 계속 쓰자는 이는 35.8%, 다시 공모하자는 이는 18.9%였다. 

도입 초기 말 많았던 뉴욕 브랜드서울시는 I.SEOUL.U가 시민이 선택한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김동경 서울시 브랜드담당관은 “시는 일련의 프로세스만 관리했으며, 시민이 새 브랜드를 결정한 것이므로 함께 브랜드 파워를 키워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975년 I ♥ NY이 처음 나왔을 때도 뉴욕시민들 사이에선 ‘내가 왜 이 도시를 사랑해야 하느냐’는 부정적인 반응이 있었지만 여러 캠페인을 통해 지금은 모두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I ♥ NY의 초기 반응은 시원찮았다. 70년 1차 석유파동 후 실업자로 가득한 뉴욕은 사랑받을 만한 도시가 되기에 충분하지 못했다. 그러나 꾸준한 캠페인을 통해 이미지를 변모시켰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브랜드로 장수하게 됐다. 서울시는 이런 사례를 바탕으로 지하철 역사 등 시설에 I.SEOUL.U를 집중 홍보하면서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방침이다. 서울도시철도공사와 광고업체 등을 통해 홍보전에 나선 상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시민 거버넌스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희복(한국PR실학회장)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브랜드를 선정할 때 시민의 뜻을 일부 반영하는 것은 좋지만 ‘미인선발대회’처럼 다수의 선택으로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슬로건은 쉽고 빠르고 어렵지 않아야 하는데 너무 많은 내용을 함축하다 보니 의미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함축적인 내용을 간단한 문장에 우겨 넣었고,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 절차에 집착해 전문성이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I.SEOUL.U 논란을 잠재우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비판의 목소리를 전격 수용해 다시 브랜드를 만드는 방법, 기존 브랜드인 하이서울을 그대로 쓰는 방법, 바뀐 I.SEOUL.U로 밀고 나가는 방식이다. 브랜드 철회 주장이 만만찮지만 지금까지 8억원이나 들어간 점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희복 교수는 “방금 태어난 아기가 잘 될지, 안 될지는 어떻게 키우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한목소리로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캠페인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해외 도시 브랜드는 직관적?감각적지방자치단체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도시 브랜드를 앞다퉈 만들었다. 인천의 ‘Fly Incheon’이나 경기도의 ‘Global Inspiration, 세계 속의 경기도’처럼 목표를 지향하는 브랜드와 함축적 의미를 담은 대전의 ‘It’s Daejeon(It’s는 Interesting, Traditional and Cultural, Science and Technology의 준말)’ 같은 경우가 일반적이다. 도시 특성을 설명(Colorful DaeGu) 하거나 역사와 전통을 내세우기도(천년의 비상 전라북도) 한다.


브랜드 네이밍 업체 인큐브랜드의 김인겸 대표는 “브랜드는 결과적으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체성을 먼저 확보해야 한다”며 “서울 외에 17개 광역시·도 브랜드를 보면 ‘다이내믹’ ‘브라보’ ‘넘버원’처럼 대단해 보이지만 실상은 추상적인 용어가 많이 들어간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급자 중심의 작명은 시민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한다”며 “I.SEOUL.U는 공급자 중심의 네이밍은 아니지만 정체성이 불명확하다”고 덧붙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고흐 박물관 앞에 설치된 ‘I amsterdam’ 대형 조형물. 도시 브랜드 자체가 훌륭한 관광상품이 된 대표 사례다. [사진 서울시]

한국과 달리 실제로 해외에서 성공한 도시 브랜드들은 대개 감각적이거나 직관적인 표현이 주를 이룬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I amsterdam’은 ‘I am’과 ‘Amsterdam’을 합쳐 공통 철자인 ‘am’을 줄인 형태다. 인구의 절반이 외국인인 도시에서 ‘내가 곧 암스테르담’이라는 다문화 사회 속성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면서도 기억하고 외우기 쉬운 장치를 심어둔 것이다. 암스테르담 반고흐 박물관 앞에 설치된 ‘I amsterdam’ 조형물은 세계적인 사진촬영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비슷한 브랜드로 덴마크의 코펜하겐(C-OPEN-HAGEN)은 도시 이름을 브랜드화하면서도 open을 부각시켜 개방성과 다양성을 내세우고 있다. 100년 장수 브랜드 정착시켜야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대학생 리더십 아카데미에서 “도시 브랜드는 2% 부족하다 느낄 때 이를 꽉 깨물고 참고 바꾸지 않고 3대를 내려가면 정착한다”며 “세계적으로 성공한 브랜드는 다 그렇게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박원순 시장이 13년간 써온 하이서울 브랜드를 바꾼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오 전 시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때 만든 하이서울 브랜드를 그대로 이어받아 ?소울 오브 아시아?라는 슬로건만 덧붙였다.


오 전 시장이 박 시장을 비판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뚝심을 갖고 장수 브랜드를 키우는 것은 중요하다. 지자체장이나 정당이 바뀌면 브랜드를 또다시 만드는 것은 재고해야 된다는 의미다. 수십 년, 길게는 100년을 이어갈 수 있는 도시 브랜드 정립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서울에 이어 인천시·대구시 등도 새 도시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거수 홍익대 미대 시각디자인 교수는 “서울이 브랜드를 교체하기 시작하면 다른 지자체들이 따라 하게 된다”며 “단체장들이 ‘내가 만든 브랜드’라는 것을 알리려 행정적인 무리수를 둘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브랜드를 바꾸는 데는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만큼 정당한 교체 이유와 효과, 계획이 있어야 한다”며 “치적 과시용 쇼로 전락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장주영 기자, 김도원 인턴기자(경희대 언론정보학 3)?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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