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스페인축구 '유망주 감별사' 키케 감독, 시흥서 ‘축구스타 K’ 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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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민축구단 창단의 두 주역, 키케 감독(왼쪽)과 김영진 해외사업팀장. 키케 감독은 선수 발굴 및 육성을, 김 팀장은 국내 및 해외 연계 마케팅을 총괄한다. [사진 김성룡 기자]

스페인 프로축구를 대표하는 빅클럽은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다. 하지만 유소년 쪽에서는 판도가 다르다. 아틀레티코 빌바오가 절대 강자다. 연고지역인 스페인 북부 바스크 출신을 우대하는 '순혈주의'를 고집하면서도 유소년 리그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주목받는다.

인구 45만 명의 수도권 중소도시 시흥시가 빌바오를 모델로 삼아 의미 있는 도전에 나섰다.
지난달 24일 창단한 시흥시민축구단(FC 시흥)을 한국의 아틀레티코 빌바오로 키우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역 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축구 유망주를 발굴·육성해 스타로 키우고, 이들을 국내·외 빅 클럽으로 이적시켜 구단 운영자금을 마련하는 선순환 시스템을 구상 중이다. 체계적인 지원으로 '시흥의 아이들'이 한국 축구를 넘어 세계 무대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최종 목표다.

'FC 시흥호'의 선장은 '키케'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엔리케 리네로(49) 전 빌바오 유소년팀 총괄 감독이 맡았다. 빌바오 시절 페르난도 요렌테(30·세비야), 하비 마르티네스(26·바이에른 뮌헨), 안데르 에레라(26·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유망주들을 발굴해 스페인 국가대표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지난 2012년부터 2년간 FC 서울 유소년팀 총감독을 맡아 한국 축구 환경에도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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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과정을 함께 하며 FC 시흥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는 키케 감독은 "빌바오 산하 유스팀의 수준은 자타공인 스페인 최강이다. 후베닐(18세 이하)팀의 경우 3년 전 유소년리그에서 우승한 뒤 아예 바스크 지역 3부리그에 편입해 성인들과 경쟁한다"면서 "스페인 축구의 미래로 주목 받는 이케르 무니아인(23·빌바오)이 프리메라리가 최연소 득점 기록(16세7개월18일)을 세운 것도 일찌감치 성인무대에 적응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빌바오의 선수 선발 시스템은 폐쇄적이다. 바스크 태생이거나, 외국인이더라도 유소년 시절을 바스크 지역에서 보낸 이들만 클럽 A팀에서 활용하는 전통을 100년 넘게 지켜가고 있다.
그럼에도 프리메라리가 클럽 중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단 한 번도 2부리그로 강등되지 않았다. 수준급 선수들을 꾸준히 길러내 전력을 유지한 덕분이다. 비결은 자부심과 창의성에 있다. 키케 감독은 "빌바오 엠블럼을 달고 뛰는 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아이들에게 꾸준히 가르친다. 훈련 중에는 순간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상황을 끊임 없이 만들어 '몸보다 생각이 빠른 선수'로 키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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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시흥도 비슷한 길을 걷는다. 챌린저스리그(4부리그) 소속 성인팀과 함께 창단할 유소년팀(U-15, U-12)은 시흥시 및 인근 지역 거주자에게 우선권을 준다. 입단 테스트에 합격한 모든 선수는 수업료를 전액 면제 받는다. 유망주들이 가정 형편에 상관 없이 마음껏 축구를 배우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흥시에 대한 애착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시흥시민축구단의 마케팅 업무를 총괄하는 김영진 해외사업팀장은 "빌바오와 업무 협약을 맺고 성인팀 선수 중 시즌 MVP에게 스페인 프로무대 진출 기회를 제공한다. 비용은 전액 구단이 부담한다"면서 "국내 클럽축구 무대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창단은 '축구단을 시흥의 자랑으로 키우자'는 공감대 아래 이뤄졌다. 시의회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뭉쳐 창단 자금(5억원)을 승인했다. 홍원상 시흥시의원(새누리당)은 "좋은 선수를 길러 우리 시는 물론,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하자는데 여야 의원 모두 공감했다"면서 "축구단이 하루 빨리 자리를 잡아 축구 유망주 생산자 역할에 전념하길 바란다. 시의회도 구단이 역량을 키워가는 과정에 건전한 감시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흥 구단은 기량이 무르익은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국내·외 구단에 진출시킬 예정이다. 선수에겐 새로운 도전 기회를 주고, 구단은 이적료를 받아 새로운 유망주를 발굴할 동력을 얻는 구조다. 이 또한 빌바오의 시스템과 닮았다. 이상환 구단 이사는 "4부리그팀인 시흥이 거액(연봉 1억2000만원)을 들여 세계적인 지도자를 영입한 건 체계적인 시스템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라면서 "과감한 투자로 더 큰 결실을 맺겠다"고 말했다.

시흥=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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