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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살아남은 대가' 트라우마 21년…암과 싸우는 지존파 생존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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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지존파 생존녀, 21년 만에 방송서 생활 공개
유방암·자궁암·우울증·공황장애…처절하게 망가진 삶

1994년 살인 공장을 차려놓고 연쇄 살인을 벌인 지존파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는 가공할만한 트라우마와 각종 암에 시달리고 있었다. JTBC 탐사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금요일 밤 9시40분)가 6일 방영분 ‘나는 지존파 생존자입니다’ 편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단독 공개한 것이다. 납치된 뒤 지존파의 강압에 의해 살해를 저지른 피해자 이수정(가명·48) 씨는 지난 21년간 악몽 같은 생활을 해왔다.

1994년 지존파 생존녀, 21년 만에 방송서 생활 공개
유방암·자궁암·우울증·공황장애… 처절하게 망가진 삶

◇ 자궁암·유방암·우울증·공황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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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가리고 인터뷰한 이수정(가명)씨

이 씨는 심리적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 평소에도 외출할 때 주위를 의식해 얼굴을 가리고 생활하고 있다. 한꺼번에 항우울제·공황장애 약 등 7가지 약을 먹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온몸이 그야말로 종합병동인 것이다. 40대 중반인 이씨는 자궁암에 이어 유방암 수술을 앞두고 있고 그 외에도 여러 병마와 싸우고 있다. 경제적 손길이 절실한 상태이다.

그런데 이 씨와 인터뷰하면서 놀라운 점이 발견됐다. 이 씨는 아주 영리하고 표현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만약 지존파 사건을 당하지 않았다면 아마 당찬 사회인으로 활약하고 있을 것이다.

◇ “트라우마 수치 78점” 극도의 위험수준 
스포트라이트 제작팀은 트라우마 체크를 해봤다. 설문지 방식이다. 총점이 88점인데 78점이 나왔다. 전문가들이 깜짝 놀랄만한 심각한 수준이다. 정상인은 25점 미만이다. 보통의 범죄피해자도 40점 수준이다.

미술치료도 해보았다. 이씨는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무표정한 이모티콘으로 표현했다. 그만큼 심리적으로 억압돼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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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치료에서 이수정(가명)씨가 그린 자신의 감정

기묘한 이상증세도 보였다. 보통 트라우마를 당하면 그 기억을 회피하는 게 정상이지만, 이 씨는 그 때 기억을 꼼꼼히 적어놓고 있다. 심지어 관련 기사가 나오면 가명으로 댓글까지 달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분석한다. 회피할 수 없을 정도로 트라우마가 컸다는 것이다.

◇ “공적 치료 한 번도 못 받아” 
이 씨의 경우 21년 동안 한 번도 공적 보살핌을 받지 못 했다. 이 씨는 자신의 돈을 써가며, 그것도 초기에 부적절한 치료를 받으면서 트라우마를 더 키워온 것이다. 범죄 피해자에게 싸늘하고 무관심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지존파 사건 = 김기환 등 7명이 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살인공장을 차려놓고 5명을 연쇄 살인한 사건이다. 이들은 부유층에 대한 증오를 표출하며 조직을 결성했다. 당시 부유층 2세 유학파로 일컬어지는 오렌지 족의 행태와 대규모 입시 부정이 사회적 비난을 샀다. 하지만 지존파에게 희생된 사람들은 부유층이 아닌 평범한 시민이었다. 지존파 일당은 95년 11월 2일 전원이 사형됐다. 생존자, 이씨는 범행에 가담했지만, 그 스스로도 범죄 피해자인데다, 강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임이 인정돼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JTBC 박지윤 기자 park.jiyoon@joongang.co.kr

(지존파 생존자, 이수정 씨 도와주실 곳: 02-2031-8283, huh.jin@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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