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국가경쟁력 26위, 한국이 풀어야할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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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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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석
자본시장연구원장

지난달 28일 세계은행이 발표한 국가별 기업경영환경 평가에서 한국은 세계 4위라는 역대 최고의 성적표를 받았다. 반면 9월 발표된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는 26위에 머물렀다. 왜 이런 상이한 평가가 나온 것인가.

 두 조사는 평가방법에서 차이가 있다. 세계은행은 객관적인 통계분석이 평가 원칙이다. WEF는 그 나라 경제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이 전체조사의 80%이다. 평가방법의 차이는 평가범위의 차이와도 연결된다. 세계은행의 평가는 수치화가 용이한 기본적인 규제환경에 국한돼 있다. 제한된 범위의 법령을 분석해 지수화하는 방식이 사용된다. ‘질’ 평가는 객관적 분석이 곤란하므로 제한적이다. 기업경영은 규제환경만이 아니라 요소시장인 금융시장과 노동시장의 효율성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받는다. 그러나 객관적 비교가 쉽지 않으므로 조사범위에 거의 넣지 않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설문조사에 의존하는 WEF는 질적 평가에 주안점을 둔다. 규제환경의 경우 규제서비스의 질에 초점이 있다. 노동시장 신축성, 금융시장 효율성 등 기업경쟁력에 의미가 있는 여타 다양한 요인도 평가범위에 포함된다.

 결국 두 기관의 평가차이는 한국이 기본적인 규제환경의 ‘하드웨어’ 평가에서는 우등생 점수를 받은 반면, 규제서비스와 핵심 요소시장의 ‘질’ 평가에서는 낙제를 기록하였음을 뜻한다. 한국 국민이 원체 까다로워 체감도 점수가 낮은 것이라면 웃고 넘길 일이지만, 한국 경제가 소프트웨어 개혁에 발목을 잡혔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렇게 보면 두 조사의 평가차이는 새롭지는 않을지라도 중요성이 남다른 정책과제를 되새기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규제운영의 경직성, 일관성 부족, 투명성 부족, 그림자 규제의 제거 등 규제서비스의 질 개선에 노력해야 함은 이번 평가가 주는 시사점이다. 특히 규제경직성 사례로 자주 거론되어 온 서비스산업의 원천적인 진입제한은 신속히 해소돼야 한다. 서비스산업기본법, 관광진흥법, 국제의료사업지원법 등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가 시급한 이유다.

 구조개혁에 대한 시사점도 있다. 노동시장과 금융시장은 세계경제포럼 평가에서 각각 최하위에 가까운 83위, 87위를 기록했다. 역시 계류중인 개혁법안의 처리가 중요한 점은 말할 나위가 없다. 더불어 강조할 점은 시장생태계 조성이 개혁의 궁극적인 목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WEF의 금융부문에는 유난히 시장의 실제와 설문결과로 나타난 체감도 사이의 격차가 큰 사례가 많다. 예를 들면 벤처자본의 이용가능성에서 한국의 순위는 86위이다. 한국의 국민소득 대비 벤처자본의 규모는 미국 다음인 세계 2위이다. 다만 미국과의 차이는 한국은 대부분이 시장자율이 아닌 공공부문의 자금공급이라는 점이다.

 시장자율 생태계의 미성숙은 시장개혁에 대한 체감도를 낮게 하는 근본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시장자율 생태계 조성은 정부의 몫이지만 시장참가자 모두의 행태변화가 수반돼야 하는 우리 모두의 과제다.

신인석 자본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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