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10~20개 기업 몰린 ‘인터넷 은행’ 잘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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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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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언제부터인가 ‘핀테크(금융과 정보기술의 융합)’라는 용어는 흔한 표현이 됐다. 언론 보도를 보면 가까운 장래에 금융과 기술의 융합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거의 모든 금융활동은 모바일 기기를 이용하여 벌어지게 될 것 같은 태세다. 그런데 우리가 접하고 있는 현실이 과연 그런가. 일반인의 시각에서 보면 언론 보도를 통해 ‘○○페이’의 이름으로 여러 기업이 경쟁하고 있는 상황 등을 단편적으로 접하게 될 뿐, 일상생활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를 접하게 될 가능성은 지금으로는 요원해 보인다.

 최근 논의가 많이 되고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미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는 인터넷전문은행이 설립돼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소수의 물리적 영업점을 유지하거나 아예 영업점을 두지 않고, 영업활동의 대부분을 인터넷을 통해 하는 은행을 말한다. 흔히 빅데이터 분석·활용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이를 통해 기존의 은행이 제공하던 것과는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 기대되는 새로운 유형의 은행이다.

 그런데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예비인가신청을 보면, 모든 신청은 다수의 투자자를 포함하는 컨소시엄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한 컨소시엄에 적게는 10개 남짓, 많게는 20개의 기업이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여러 기업이 참여하게 된 것은 은행법이 주주의 주식보유한도에 제한을 두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 비금융주력자인 산업자본은 최대 4%까지 은행의 주식을 보유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고, 금융자본은 원칙적으로 최대 10%까지 허용된다. 인터넷전문은행을 통해 혁신을 주도할 것이 기대되는 정보기술(IT) 기업이라 해도 기껏해야 4%의 지분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다수의 기업이 참여해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하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빅데이터 기법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게 해주는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가능하기는 할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는 설사 인터넷전문은행이 한 둘 설립된다고 해도 애초에 기대한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무엇이 문제인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그 중 중요한 것 하나는 주주의 주식보유에 큰 한도를 두고 있는 ‘은산(銀産)분리’다. 산업자본이 은행을 사금고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한국 경제구조에서는 특히 중요하다. 하지만 은행의 사금고화를 막는 방법이 지분구조에 대한 제한이라는 거친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거액대출제한이나 특수관계인에 대한 대출금지 등을 포함해 많은 대안이 있을 수 있다.

 핀테크는 세계적인 대세이다. 은산분리는 타당한 정책목표이지만 이를 달성하는 수단이 핀테크 활성화라는 시대적 흐름과 충돌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은산분리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수단을 좀 더 세련되고 세밀하게 구성해 새로운 기술과 기법이 금융시장에 자유롭게 도입되고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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