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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미·일, 위안부 문제 시급성 느껴 … 올해가 돌파구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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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왼쪽)가 3일(현지시간) 워싱턴 사무실에서 본지 김현기 특파원(가운데), 니혼게이자이신문 특파원과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중국 경사론’에 대해 “한국이 미·중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시각은 근본적 실수”라고 일축했다. 러셀 차관보 뒤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세계지도 장식장을 살펴보는 사진이 걸려 있다. [워싱턴=조한스 기자]

‘한국이 골대 움직여’ 일본 주장엔
“인류의 가치 문제는 불변한 것”
“미국은 남·북한 가까워지기 희망
그만큼 한·중 관계 진전에 긍정적”

미국의 동아시아 외교 정책을 총괄 지휘하는 대니얼 러셀 차관보(61)는 3일(현지시간) 한·일 간 위안부 문제에서부터 한국의 중국 경사론, 남중국해에서의 해상 작전, 미국 내 '한국 피로증' 등 현안에 대한 미국의 생각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외교관답게 교묘히 말을 돌려 했지만 곳곳에 '뼈'가 있었다.

러셀 차관보가 2013년 8월 공식 취임 이후 미국에서 한국·일본 언론과의 정식 인터뷰에 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최근의 한·일 관계 해빙 무드를 의식한 듯 "오늘 중앙일보·니혼게이자이신문와의 최초의 한·일 공동 인터뷰는 내게 환상적 경험"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워싱턴 국무부 6층의 러셀 차관보 사무실에서 약 50분간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지난 2일의 한·일 정상회담을 어떻게 평가하나.

"양국 간에는 지속적으로 중요한 대화가 이뤄져 왔다. 양국 외교장관, 국방장관 그밖에 많은 중요한 지도자들 간에 많은 진전도 있었다. 이는 일본과 한국 정부, 그리고 무엇보다 양국 국민 간 유대가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 양국이 얼마나 이해와 가치를 공유하는가를 보여준다. 여기서 난 한국이나 일본 모두 상대방의 성공, 그리고 상호간의 성공에 있어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확인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의 양자 정상회담이 오랜만에 이뤄진 것은 맞다. 2014년 4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박 대통령-아베 총리 간의 3국 정상회담에 관여한 입장에서 한·일 정상이 서로 만나 회담을 하는 기회를 갖기를 고대했다. 단 한번의 만남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회담이) 매우 중요했고 앞으로 나아가는 긍정적인 것이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번에 양국 정상과 측근들이 말한 것처럼 양국 정상 간에는 서로 털어놓고 직접적이고 솔직한 대화가 오간 것으로 안다. 양측 모두 이번 회담을 건설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미국)도 이번 회담이 민감한 과거사를 다루는 데 있어 화해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물론 양국 협력, 나아가 한-미-일 3국 협력이 끊임없이 좋게 계속될 수 있는 모멘텀, 자극제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의지는 밝혔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는 없었다는 회의적 시각도 많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양국에 뭘 원하나.

"우리는 일본과 한국이 과거의 그 문제(위안부 문제)가 미래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도록 하는, 한·일 양국에서 모두 정치적으로 실행 가능한 길을 찾길 원한다. 양국은 (미국의) 가까운 동맹이자 소중한 민주국가이며, 지역 경제의 측면에서도 가장 중요한 나라이다. 분명한 건 세계경제는 너무나 취약하고 또 우리 앞에 놓여있는 여러 도전들은 너무나 심각한 것들이어서 한·일 양국이 파트너로서 또 민주주의 국가로서 풀 가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한·일이 미국이나 다른 국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한·일) 지도자 간에 민감한 역사 문제에 대해 '완전하게' 종결할 수 있는 길을 찾길 원한다. 난 아베 총리가 회담 후 '(위안부 문제를) 장래 세대에 장애로 남겨선 안 된다'고 밝힌 점에 주목한다. 난 이는 중요한 발언이며 건설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일본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 법적인 문제는 1965년에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해결됐지만 '인도적 지원'은 가능하다는 입장인 반면 한국은 (일본의) 국가책임과 배상을 요구한다. 어느 쪽이 옳다고 보나.

"어느 쪽이 옳은지는 나나 미국이 심판할 문제가 아니다. 한일 양국이 그들의 전통과 여론와 합치하며 양국이 그동안 이뤄온 것들을 보다 견고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제 양국이 광범위한 분야에서 컨센서스가 있으니 진행 중인 대화를 계속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적절한 길을 찾을 것으로 믿는다. 한미일 모두 이 문제의 시급성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이니만큼 역사적 돌파구(breakthrough)로 만들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다. 다만 어떤 구체적 내용, 형태로 양국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걸 마련할지는 양국 지도자에 달렸다."

-올해 중에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나.

"양국 관계에 있어 오랫동안 쟁점이 됐던 현안인 만큼 이 문제를 달력에 맞춰 처리할 일은 아니다. 단계별로 그 전의 것들을 확인하고 보다 큰 신뢰, 보다 큰 확실성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이는 뭘 뜻하는가 하면 일본 입장에선 (새로운) 합의가 이뤄질 경우 그것이 (마지막이란) 확신을 가져야만 하고 '항구적 합의(enduring agreement)'여야 한다. 일본으로선 이 (위안부) 문제가 영원히 재발하는 시련(challenge)이 있어선 안 된다. 한편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일본의 사과 표현이 진심을 담고 있다는 한국 국민의 '믿음'(faith)이 있어야만 한다고 난 생각한다."

-위안부 문제에 있어 일 정부는 한국이나 미국에 '한국이 골대를 움직인다(moving goal-post)'며 한국이 일관성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동의하나.

"정치도, 협상도, 여론도 다이내믹(dynamic)한 법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위안부 문제 및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한·일 양국 간 자유로운 협력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을 함에 있어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에) 일관되며 불변의 것들도 있다. 이 문제는 인류의 가치의 문제이며 두 민주국가가 이익을 공유하는 문제란 점이다. 한·일뿐 아니라 미국은 지금 북한의 매우 매우 심각한 위협이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지정학적, 경제적으로 드라마틱하게 부상하고 있는 중국 문제를 다뤄야 한다. 전염병, 이슬람국가(IS) 등으로부터의 테러 위협, 기후변화 등 거의 전 영역에 걸쳐 글로벌한 위기에 놓여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로벌 경제의 취약성을 떠안고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필요한 건 협력이다."

-일본 안보법제 통과로 한·일 간 갈등도 있다. 그 동안 이에 대한 미국의 명확한 견해를 듣지 못했는데.

"내가 명쾌한 답을 주게 돼 다행이다. (웃음) 미국과 일본이 상호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하는데 있어선 대단히 투명성이 있었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하는 헌법 해석을 반영하면서 새로운 안보 법제를 채택하는 데서 그러했다. 일본 자위대과 방위성은 한국의 카운터파트와 정기적으로 접촉했고 동맹인 미국과 일본도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세부 사항과 그 정당성을 동맹인 한국에 알리고 공유했다. 따라서 난 솔직히 이를 마찰의 근원으로 여기지 않는다. 미일동맹의 업그레이드와 현대화의 결과로, 또 최근 통과된 안보 법제의 결과로 (그간) 지역의 평화와 안보에 크게 기여해 왔고 한국 방어를 지원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본이 더 많이 (역할을) 하고 더 잘 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우리 모두의 이익이다."

-한가지 확인하자. 일 자위대가 북한에 들어갈 때 한국의 동의가 필요한 건가 아닌가. 아니면 향후 한·미·일 3국이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하는 건가.

"우리는 양자 간에, 삼자 간에 일본의 새로운 법제의 의미를 토론해 왔다. 내 생각엔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한국의 급변 사태나 만일의 사태와 관련한 일본의 어떤 움직임도 국제법에 완벽하게 일치하며, 관련 국가의 주권을 존중할 것이라는 일본과 미국의 분명한 약속이다."

-남중국해 문제가 이번 한중일 정상회담에서도 나왔다. 남중국해 문제에 관한 한국 정부의 입장에 만족하는가

"남중국해에 관해 박 대통령과 리커창 중국 총리가 어떻게 했는지는 내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특히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는 국제법에 기반한 질서의 이해 당사자들이다. 동중국해의 경우 일본과 한국이 특별한 지분이 있는데 때론 중국이 그에 도전한다. 이에 일본과 한국은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에 나선다. 남중국해의 경우 우리 모두가 청구권자(직접적으로 권리를 갖는 당사국)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목소리를 내고 평화적 해결에 도움을 주는 책임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사실상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몫도 없기 때문에 우리가 객관성을 확보하고 (나설) 권리도 갖는다."

-오바마 대통령이 남중국 문제를 대처함에 있어 대화에 치중하는 바람에 오히려 중국이 강경하게 나서게 된 건 아닌지.

"내가 오바마 정부에서 2009년 1월 21일부터 아시아태평양 정책팀에 있지만 미국 정부 내에서 이뤄지는 걸 거론하지는 않겠다. 우리 정책과 의사결정에선 건전하고 건설적이며 전략적인 토론이 이뤄진다고 증명할 수 있다. 우리는 갈등이 벌어지는 지역과 문제가 되는 분야를 미봉책으로 덮거나 눈을 가리고 있지 않다. 우리는 아주 직접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를 다루고 있고 이를 무시하지 않고 있다. 어느 관계에서나 경쟁이 있는 걸 인정한다. 우리의 목표는 건전한 경쟁,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것이고 파괴적 경쟁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지금, 내 친구인 해리 해리스 미군 태평양사령관은 중국 베이징에 있다. 해리스 사령관은 판창룽(范長龍)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만났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수뇌부도 만났다. 해리스 사령관은 매우 깊은 대화도 가졌다. 다른 나라와 잘 지내는 게 유화책을 쓰거나 순응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대결과 갈등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 어느 것도 우리가 바라는 게 아니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당분간 계속해서 남중국해에 해상작전을 하겠다고 하는데, 정말 효과가 있는 것이냐.

"해상 작전의 목적은 중국이 인공섬을 만들지 못하도록 막는 게 아니다. '항해의 자유' 작전은 우리의 큰 전략의 일부일 뿐이다. 나는 우리 모두가 같은 걸 원한다고 본다. 우리는 중국과 좋은 관계를 원하고 있고, 중국과 이웃 나라들 간에 좋은 관계를 원한다. 우리는 중국이 적극적으로 역내와 국제 체제에 기여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는 규범을 만들 때 중국의 목소리를 듣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중국이 그 규범을 준수하기를 바란다. 박근혜 대통령, 오바마 미 대통령, 아베 총리가 중국과 하는 일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 경제가 발전하고 중국이 국제법과 국제규범에 관여하게 해 이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게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그 반대는 모두에게 대단히 손해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독려하는, 매우 건설적인 노력에 나서고 있다. 전초기지들을 건설해 (영유권) 주장을 하는 걸 중단하는 건 중국에 달려 있다. 그건 대단히 안정을 해치고 중국의 국익에도 불리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좋은 소식은 지난 9월 25일 이곳 워싱턴의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중국 국가주석이자 중앙군사위원회주석, 공산당 총서기인 시진핑 주석이 중국은 스플래틀리 제도의 전초기지들을 군사화할 의도가 없음을 명백히 밝혔다는 점이다. 이제 그 엄중한 약속을 지켜야 하는 쪽은 중국이다. 이는 중요한 시금석이다.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미국 내 일부에선 한국이 중국에 너무 치우치고 있다는 이른바 '중국 경사론'이 나오는데.

"그건 미국과의 중요한 관계, 또는 중국과의 중요한 관계를 양자택일의 과제로 보는 근본적인 실수라고 생각한다. '제로섬'이 아니다. 우리의 전략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나라들에게 선택을 보장하는데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를 보장하면서 어떤 나라도 중국 또는 미국과의 관계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 당해선 안 된다. 미국은 중국과의 양자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이나 일본과의 관계를 해치면서 까지는 아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미국 입장에선 모두가 북한이 한국에 보다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그 만큼 베이징과 서울의 양자 관계 진전은 긍정적이다. 중국과 한국의 양자 관계 강화는 그런 점에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베이징을 찾아 열병식에 참석했는데 박 대통령이 중국군 군사 퍼레이드를 봤을 때 '이들은 우리 사람들을 공격하고 죽였던 이들'이라고 생각했을 게 틀림없다. '이들은 일본과 싸운 게 아니라 우리와 싸웠다'고 말이다. 박 대통령의 마음 속에 서로 상충하는 느낌을 갖게 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난 수년 간 중국과 한국의 관계개선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박 대통령이 9월 3일 베이징에 있었던 게 왜 타당한지 잘 설명해준다."

워싱턴=김현기·채병건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사진=조한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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