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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크스는 언제 깨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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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박재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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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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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한 검사와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가 새삼 떠오르는 시기다.

 “수사할 때 징크스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그건 모르겠고, 후배들이 믿고 따르는 사람은 검찰총장이 안 된다는 게 징크스”라고 했다. 다소 생뚱맞았지만 메시지의 여진이 계속됐다. “상명하복은 무슨 개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란 생각으로 회사 다니는 거죠….” 한 검사의 넋두리는 현실이었다. 검찰의 수장은 미움과 지탄의 대상이란 생각이 휙 지나갔다.

 이런 검찰총장에 오르기 위해 그제 8명의 전·현직 검사가 심사를 받았다. 검찰 내부에선 최고참 그룹에 속하는 7명이, 외부에선 특수통으로 평가받았던 한 명이 나왔다. 이 중 4명은 권력의 고장인 대구·경북(TK) 출신이고, 2명은 부산·경남(PK), 나머지는 호남과 충청으로 구색을 맞췄다. 뭔가 켕기는 게 있는지 경제부처의 수장급 인사가 지원하는 것으로 소문난 2명이 다크호스로 부상하기도 했다.

 법조 삼륜과 학계, 시민단체 등을 대표한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검객(劍客)들을 상대로 칼질을 했다. 위장전입과 그린벨트 투기 의심 등을 시작으로 병역면제 의혹, 징계 전력, 과거 정권 청와대 근무 경험 등이 대상자들의 발목을 차례차례 잡고 넘어졌다. 강력한 2명의 후보에 검찰 내 최고의 재산가와 법무부 장관의 동향인 2명이 더해져 모두 4명이 1차 관문을 통과했다. 눈치 빠른 사람은 누굴 위한 경쟁인지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으로 좁혀진 분위기 속에서 이뤄질 최종 낙점자 선정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두 사람 모두 충성도 부분에선 큰 하자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사람은 현 정부 들어 눈엣가시 같았던 정당을 와해시키는 데 공을 세웠고, 또 한 사람은 정권이 주문했던 비정상적 기업들에 대한 사정수사를 뚝심 있게 몰고 온 게 이점으로 작용했다. 물론 이는 오로지 여권의 시각에서 바라본 분석이다. 여기다 TK라는 공통의 지방색은 하마평이 오르내리는 내내 아성처럼 작용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좀 더 파고들어가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직의 안정이란 검찰 내부의 명분이 혁신이란 요구를 어떻게 방어할지부터 관심사다. 검찰 조직의 연소화는 정권과 관계없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불만을 끌어내고 있다. 이제 갓 50대에 접어든 검사들이 ‘영감’ 행세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다. 법원과 비교할 때 ‘어린 검찰’의 불안정한 모습은 국민의 의구심을 확대 재생산시킨다. “절제되지 못한 검찰권 행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회의 시작과 함께 “연수원 기수 16기에서 한 명, 17기에서 3명을 선발하자”고 합의한 것을 볼 때 후임자는 17기가 대세라는 주장도 있다. 대검 중수부 폐지로 검찰총장의 권한이 약화된 상황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이 정치권과 직거래를 할 수 있다는 비판적 견해도 크게 호응을 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검찰 내부에선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정교과서 추진과 KBS 신임 사장 선발 과정을 볼 때 설득력을 갖는다.

 나와 마주했던 일선 검사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흥미롭게 후임 검찰총장 인선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밑바닥에는 ‘체념과 불만’의 감정도 스며 있다. 역대 검찰총장의 공과를 따져 보기 위해 “김진태·채동욱…” 등 한 명 한 명씩의 이름을 꼽아 보다 웃고 말았다. 허탈감이었다.

 법무부 장관은 이르면 이번 주말 차기 검찰총장 후보 한 명을 대통령에게 제청할 것이다. 후보자는 언론의 취재 공세에 결의에 찬 진중한 표정을 지어 보일 것이다. 꽃가마 속에 있는 독이 든 성배가 자신에게는 예외일 것이라고 믿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에도 그놈의 지긋지긋한 검찰의 징크스는 쉽게 깨질 것 같지 않다. 선승(禪僧)도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게 검찰총장 자리인데.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