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기업·로펌이 하이엔드 분야 인재 함께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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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중앙일보 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한 법조인들이 ‘법률시장의 새 동력 어디서 찾을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데이비드 워터스 GM대우 법무본부장 , 박진원 외국법자문업협회 고문 , 조강수 본지 부장, 최승재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 윤세리 율촌 대표 . [조문규 기자]

“변호사 수요·공급의 미스매치가 시장을 요동치게 하는 가장 큰 위협이다.”

위기의 로펌 <10?끝> 전문가 좌담
금융·국제중재 시장 커지는데
숙련 안 된 변호사만 쏟아져
수요·공급 미스매치가 위기 원인
기업 해외소송 외국 로펌과 협력
로스쿨 전문성 교육도 강화를

 지난 22일 ‘글로벌 시대 법률시장 육성 방안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본지가 마련한 긴급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위기의 요인을 이같이 분석했다. “국제 중재·금융 등 법률 분야 ‘하이엔드(high-end·고급)’ 시장엔 인재가 모자라고 일반 소송 사건이 주인 로엔드(low-end) 시장엔 신규 변호사가 넘쳐난다”면서다. 데이비드 워터스(46) GM대우 법무본부장, 박진원(69) 외국법자문업협회 고문, 윤세리(62)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 최승재(44)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가나다순)이 패널로 참석했다. 이들은 “정부·기업·로펌 등이 새 동력 확보에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진행은 본지 조강수 사회부문 부장이 맡았다.

 -내년 3차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위기 의식이 고조되고 있다. 위기의 원인을 뭐라고 보나.

 ▶최승재(이하 최)=“법률시장 사이즈는 경제성장률 및 국내총생산(GDP)과 연동된다. 경제침체와 로스쿨제도 시행이 변호사 1인당 수임 건수의 급락과 로펌의 수익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윤세리(이하 윤)=“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가 문제다. 우리 기업들이 성장하면서 법률시장의 수요는 하이엔드 쪽에서 증가하는데 공급은 1~2년차 변호사군에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로스쿨 교육의 초점이 변호사 시험 합격에 맞춰지면서 다양화·전문화라는 도입 취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기업의 법무팀에서도 외국 변호사들을 더 선호한다. 차려진 밥상도 먹지 못하는 실정이다.”

 ▶박진원(이하 박)=“적정 변호사 수는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 변호사 수 2만 명은 미국에 비하면 턱없이 적지만 일본에 비하면 많은 편이다. 미국에선 변호사 수요가 광범위하고 체계적이라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가 난다.”

 ▶데이비드 워터스(이하 워터스)=“지난 10여 년간 IBM·GM 등에서 사내변호사로 일하며 한국 변호사 채용을 많이 해봤다. 영어 잘하는 변호사를 뽑고 싶었지만 사람이 없더라. 대부분 보수가 많은 대형 로펌으로 가서다.”

 -대기업의 ‘아웃바운드(해외소송)’ 사건 공략 방안은.

 ▶윤=“전략상 외국 로펌과 한국 로펌의 컬래버레이션(협업)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SK증권이 JP모건을 상대로 낸 파생금융상품 소송 사건에서 한국 로펌은 외국 로펌의 카운터파트너로서 한국에서 반소를 제기했다. 소송이 처음엔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사건을 홈그라운드로 끌고와 유리한 상황으로 반전시키는 전략이다.”

 ▶박=“대부분 국제거래의 준거법이 영미법이라서 한국 로펌만으로는 업무 수행에 한계가 있다. 결국 협력이 대세다.”

 ▶워터스=“기업 입장에서 아웃바운드 사건에서는 어느 로펌인가보다는 어떤 변호사인가가 중요하다. 변호사마다 전문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글로벌 이슈가 있으면 그 나라에서 먼저 찾게 된다.”

 -사내변호사 3000명 시대는 로펌들에 위협인가, 기회인가.

 ▶최=“대한변협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사내변호사들은 일부 소송을 비용 절감 차원에서 직접 담당한다. 미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국내 로펌들이 위협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윤=“일반 소송 시장은 사내변호사가 흡수하고 고급화 시장은 로펌이 소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국내 기업들은 법률 서비스를 평가할 때 ‘가치’보다 ‘비용’을 중시한다. 이렇게 된 데는 변호사들의 책임도 있다.”

 -3조원대 법률시장의 파이를 키울 전략은.

 ▶윤=“과거 주문 생산 방식이 요즘은 공급자 수요 창출 방식으로 진화했다. 아이폰이 대표적이다. 로펌도 고급화 시장을 개발하는 동시에 잠재적 수요를 개발하는 단계로까지 나가야 한다. 대기업들이 하지 않는 석유·가스 등 자원 개발과 에너지 산업 등에 진출한 국내 공기업들이 로펌에 일을 안 준다. 정부가 유도할 필요가 있다. 로스쿨 문제도 새 시장을 통해 풀어야 한다.”

 ▶박=“법률 수요를 국가가 통제하기는 어렵다. 한국은 민사소송이 덜 활성화돼 있다. 미국 월가에는 주주들의 집단소송이 많다. 주가조작·분식회계·허위공시·환경 소송 등의 많은 분야에서다. 소송보다 신속하게 결론이 나오는 국제중재 분야도 발전 가능성이 크다.”

 ▶워터스=“기업들엔 재앙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집단소송이 중요하다. 변호사의 역할도 늘어날 것이다.”

 ▶최=“변협이 싱크탱크 역할을 하겠다. 로펌·변협·정부·기업이 연구개발(R&D)을 통해 새로운 수요를 찾아야 한다.”

정리=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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