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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 정비할 돈 없다더니 … 2000억 호수공원 만드는 천안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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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충남 천안시가 2000억원짜리 호수공원 조성을 추진 중이다. 구본영 천안시장이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공약한 사업이다. 하지만 충남 지역이 극심한 가뭄을 겪는 가운데 민생 관련 예산 편성 요구는 외면한 채 대규모 호수공원을 추진하는 데 대해 시민들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농로 확장 등 뒷전, 공약 사업 강행
호수 조성 전제 시민 설문도 논란
청주시 추진 435억 세종대왕 사업
감사원 “관광객 수 과도 추정” 지적

 26일 천안시에 따르면 시는 이달 초 호수공원 조성 사업 검토를 맡은 건설업체로부터 사업 관련 용역 연구보고를 받았다. 사업비로 2000억원이 필요하고 수질 정화와 시설물 관리에 매년 11억~16억원이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천안시는 보고를 받은 뒤 지난 5일부터 19일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시민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정작 여기엔 호수공원을 만들어야 할지를 묻는 내용은 없었다. 기존의 호수와 저수지를 활용할지, 입지를 정한다면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지 등에 대한 의견만 구했다. 공원 조성을 기정사실로 전제한 설문이었다. 시는 이르면 내년부터 호수공원 부지 매입에 들어갈 예정이다.

 시민들은 반발했다. 천안아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병인 사무국장은 “당장 가뭄 해소가 절실한데 호수공원을 만들겠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호수공원이 아니라 장기적인 물 부족 해결 사업부터 추진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수천만원이면 해결되는 안전 관련 사업은 하지 않으면서 2000억원짜리 사업을 추진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천안시는 성남면 대정리 주민들이 3년째 건의해온 농로 확대·포장 사업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예산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정리의 한 주민은 “농로 폭이 1m도 안돼 농기계 바퀴 한 쪽은 밭에 내려놓은 채 기우뚱한 모습으로 운전을 해야 하는 실정”이라며 “언제 농기계가 뒤집힐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은 제쳐두고 수천억원짜리 호수공원을 짓는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대정리 농로 확대·포장 예산은 3000만원이다. 이 마을을 포함해 성남면에서는 5개 마을이 농로와 하천을 정비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여기에 필요한 예산은 총 1억5000만~2억원. 하지만 천안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사업비를 주지 않았다. 올해 시가 편성한 지역 주민숙원사업 예산은 376건 57억7500여만원으로 지난해보다 13억5800여만원(120건) 줄었다.

 ◆435억원짜리 세종대왕 사업도 제동=충북 청주시는 청원구 초정리 초정약수 일대를 관광지로 만들려다 감사원의 제지를 받았다. 관광객 유치 가능 수치를 부풀렸다는 이유에서다. 감사원은 “표준에 따라 산출한 관광객은 연간 10만~16만 명인데 청주시는 여기에 중국 관광객 20만 명이 더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관광객 수가 과도하게 추정된 만큼 사업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초정약수 관광지 개발은 세종대왕이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머물렀던 행궁(3620㎡)을 복원하고 7만㎡ 크기의 ‘치유의 숲’ 등을 조성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당초 2019년까지 435억원을 투입할 계획이었다. 청주시는 “감사원 지적에 따라 행궁만 짓는 쪽으로 사업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천안·청주=강태우·최종권 기자 kang.tae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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