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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병 보증금 인상되면 소주·맥주 값 확 오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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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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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맥주 값만 500~1000원 오를 거다.”

주류산업협회 주장
시민들 이미 분리수거에 익숙
보증금 올려도 반환율 안 늘어
술값만 500~1000원 오를 것
환경부의 입장
빈 병 회수율 85% → 95% 올라
주류업체 새 병 제조 비용 절감
소주·맥주 값 올릴 이유 없다

 “빈 병 회수율이 높아지면 가격을 올릴 이유가 없다.”

  빈 병 값 인상을 둘러싼 정부와 주류업계의 마찰이 소주·맥주 값 인상 논란으로 옮겨 붙었다. 발단은 환경부가 빈 용기 보증금을 내년 1월 21일부터 ▶소주는 40원에서 100원 ▶맥주는 50원에서 130원으로 올린다고 입법예고를 한 데서 비롯됐다. 환경부는 제조원가에 직접 반영되는 취급수수료 역시 ▶소주는 16원에서 33원 ▶맥주는 19원에서 33원으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보증금을 올리면 현재 85% 수준인 빈 병 회수율이 95%로 올라가 제조업체 입장에선 원가 절감 효과를 얻게 돼 주류 가격을 올릴 이유가 없다는 게 환경부 입장이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보증금 때문에 전체 소비자가격이 오를 수는 있지만 빈 병을 반환하면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기 때문에 실제로는 가격 인상 요인이 없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캐나다와 호주 등 해외 사례나 설문조사 결과 등을 근거로 보증금을 인상하면 빈 병 회수율이 크게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취급수수료 인상으로 인해 제조사의 원가 부담(연 125억원)이 예상되지만, 빈 병 재사용률이 높아지면 제조사는 신병 제조 원가를 줄일 수 있어 결과적으로는 이익이 더 클 것이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그러자 한국주류산업협회가 2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발표를 반박하고 나섰다. 보증금이 오르면 먼저 제조장 출고가격이 9.5~9.7% 오른다. 그 여파로 편의점 등 소비자 판매가격이 연쇄적으로 8.2~9.7% 인상된다.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음식점에서 소주와 맥주를 마실 때 부담하는 가격은 500~1000원 오르게 된다는 주장이다. 오히려 보증금 인상으로 주류 중간유통업체의 배만 불릴 것이란 얘기다. 권기룡 주류산업협회장은 “보증금이 오른다고 반환율이 그만큼 높아질 것이란 주장은 근거 없는 가정일 뿐”이라며 “보증금은 소비자가 선지급하는 돈이므로 실제 빈 병을 반환하지 않으면 술값만 올리는 결과가 초래된다”고 말했다.

 협회는 보증금제도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권 회장은 “이미 대부분 소비자는 빈 병을 분리수거제도를 통해 버리는 데 익숙해져 있다”며 “보증금을 올린다고 소비자가 빈 병을 따로 모아뒀다가 소매점에 직접 반환하는 사례가 크게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 도입했던 비닐봉투, 종이봉투, 일회용 컵의 보증금 반환 제도 역시 모두 실패했다”고 강조했다. 빈 병 보증금 인상 이전에 비닐봉투(50원)·종이봉투(100원)·일회용 컵(100원)에 대해서도 보증금제도를 도입했지만 회수율이 저조해 이미 폐기됐다. 흠집이 난 용기나 병에 생긴 백태 등에 유난히 민감한 국내 소비자의 태도도 빈 병 재사용률을 떨어뜨리고 있어 보증금 인상만으로 이를 바꾸는 건 역부족이란 주장도 나온다.

주류산업협회는 “관계부처나 소비자·주류업계에 의견 한 번 물어보지 않고 결정하면서 충분한 사전연구나 시뮬레이션을 통한 실증분석도 없이 결정된 졸속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빈 용기 보증금 인상 입법예고 후 확산하기 시작한 빈 병 사재기 역시 환경부의 단속 발표에도 불구하고 줄지 않고 있다. 빈 병 값 인상 예고 후 하루 2000만 개씩 쏟아져 나오던 빈 병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 여파로 주류 제조사의 생산라인 가동 중단이나 조업시간 단축사태마저 속출해 지난달 주류 출고량은 제조사 평균 15% 감소했다. 협회는 “주류공급 부족 사태가 계속되면 소매점과 음식점의 소주·맥주 확보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고 주장했다.

김동호 선임기자, 황수연 기자 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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