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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화백 별세, '미인도' 위작 시비에 "자식 몰라보는 일 절대 없다" 항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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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작품 `그라나다의 창고지기 하는 여인` ( 1993 ) [사진 서울옥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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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화백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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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화백 별세 [자료사진 중앙포토]

천경자  화백 별세, 향년 91세

천경자(91)화백이 두 달 전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숨을 거둔 것으로 밝혀졌다.

국내 미술계와 소식이 끊겼던 천 화백은 1년 전부터 생사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뉴욕에서 함께 살며 어머니를 간호한 맏딸 이혜선(70)씨는 "지난 8월6일 새벽 5시쯤 현저히 맥박이 떨어지더니 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평안하게 돌아가셨다"면서 "어머니 시신은 화장해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극비리에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고 한국과 미국 양쪽에 사망 신고를 했다"고 전했다고 조선일보가 22일 보도했다. 이씨는 천 화백의 유골이 안치된 장소에 대해선 함구했다.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천 화백은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의대에 가라는 부친의 권고를 뿌리치고 1941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로 유학 간다. 1942년 제22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아버지를 그린 '조부(祖父)'가 입선하고 1943년 제23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외할머니를 그린 졸업작품 '노부(老婦)'가 입선하면서 화단에 들어섰다.

1952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연 개인전에 나온 우글우글한 뱀 그림 '생태(生態)'로 일약 화단의 스타작가로 뛰어올랐다. 이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되어 있다.

대표 여성작가로 승승장구하다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 위작 사건'으로 붓을 꺾기에 이르렀다.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절대 없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후 1998년 11월 일시 귀국해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맏딸 이씨가 사는 뉴욕으로 간 뒤 2003년 봄 뇌출혈로 병상에 누웠고 이후 외부와 접촉을 끊었다. 지난해 대한민국예술원이 천 화백에게 지급하던 수당 180만원을 중단하면서 생사여부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어머니를 예술원 회원에서 제외해 달라"고 예술원에 요청한 맏딸 이씨는 "어머니는 살아계시다"면서도 천화백의 모습 등을 공개하지 않아 "혹시 이미 돌아가신 것 아니냐"는 말이 무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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