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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생태적 사막 … "생명은 숨쉬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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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영국 남부의 한 생태보존지구에서 생태 탐사를 했을 때의 일이다. 이상하게 생긴 덤불 말고는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무지를 지나 시퍼런 이끼가 가득한 울창한 숲에 다다랐을 때였다.

안내를 맡은 생태학자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설명한다. "이 숲은 생태적으로 대단히 건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오래지 않아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보시다시피 나무 밑을 빽빽이 뒤덮고 있는 이끼가 나무 종자의 발아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있는 나무의 수명이 다하면 이곳은 곧 저 위에 있는 황무지처럼 되고 만다. 이런 숲을 '생태적 사막'이라고 부른다. "

도시에서 아스팔트 위를 걸을 때마다 자꾸 '생태적 사막'이란 말이 떠오른다. 어떠한 풀씨가 떨어져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땅. 유일한 녹색인 가로수들마저 마치 넥타이로 졸라맨 목처럼 나무줄기만 간신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억압의 땅. 어디를 둘러보아도 흙을 발견할 수 있는 틈이라곤 없다.

전 세계에 사막지대가 점점 늘어나서 큰일이라고 불안에 찬 목소리로 연일 떠들어대지만 우리는 이미 도시라는 생태적 사막에 갇혀 살고 있다. 이 사막은 오로지 흙먼지를 싫어하는 인간의 신발-큰 신발은 자동차, 작은 신발은 구두-때문에 만들어졌다.

지난 주말, 지방에 일이 있어 경상도 산골을 이리저리 누비고 다녔다. 지난해에 있었던 태풍 루사의 상흔을 치유하기 위해 어느 골짜기, 어느 하천에 가든 수로와 농로 정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머니 대지의 입장에서 보면 태풍 루사보다 더 끔찍한 재앙으로 보였다. 아스팔트 국도와 연결된 모든 동네 길과 농로는 시멘트로 떡칠을 해놓고 하천 둑은 아예 콘크리트 방벽으로 울타리를 쳐 버렸다.

뿐만 아니라 구불구불하던 하천은 완전히 뒤집어 파서 일직선으로 만들어 버렸다. 풀 한포기 나지 않는 하천, 물굽이와 습지가 없어진 강에 무슨 생명체가 붙어 있으리요!

어머니인 대지를 이렇게 숨 막히게 해놓고 무사할 줄 알았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이 세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있어 어디 한 군데라도 막혀 있으면 다른 쪽에 틀림없이 탈이 나게 되어 있다.

숨통을 막아버린 아스팔트 위를 구르는 자동차 매연가스가 대기 중에 층을 형성하여 태양의 복사열을 차단하면 날씨가 더워진다. 기온이 상승하면 수증기 증발이 왕성하여 구름이 많아지고 비가 자주 온다.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 빗방울은 땅에 스며들지 못하고 일직선으로 난 도로와 하천을 타고 급류가 된다. 가속력이 붙은 빗물은 땅위에 있는 모든 쓰레기와 오염물질을 남김없이 하류로 운반하고 강과 바다는 쓰레기로 가득한 썩은 물이 된다.

물의 사용량은 늘어나는데 땅 속으로 스며드는 물은 없으니 지하수의 수위는 점점 낮아진다. 수위가 낮아진 지하수로 생활하수나 공장폐수가 스며들어 먹을 수 없는 물이 된다.

결국은 잘나 빠진 '신발'에 눈이 멀어 잦은 홍수 속에 만성적인 물부족에 시달리는 이상한 현실을 맞이하게 된다.

오늘도 나는 시멘트로 말끔히 포장된 동네 골목길을 나서며 어서 이곳을 떠나야지 하는 결심을 되뇌었다. 그때였다. 깨진 시멘트 틈새로 바랭이 한 포기가 보였다.

논밭에서라면 지겹디 지겨운 바랭이건만 이 시멘트 사막에서는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다. "바랭아, 너 혼자서 여기 웬일이니?"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 대신 깨진 시멘트 틈새 아래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 나는 숨을 쉬고 싶다!"

황대권 생태공동체운동센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