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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된 영국 탁자, 독일 스탠드 … 일산서 만나는 고풍 유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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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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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넷길’ 가게 주인들이 오는 30일 벼룩시장에서 저렴하게 선보일 접시와 인형 등 유럽 앤티크풍의 생활 소품들을 들어보이고 있다. [강정현 기자]

요란한 네온사인 간판은 없었다. ‘앤의 다락방’이란 다섯 글자가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단독주택 벽에 붙은 게 전부였다. 글자 크기도 20㎝ 정도여서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내부는 가게였다. 100년 된 탁자, 옛 재봉틀, 도자기 접시와 찻잔 등이 진열돼 있다. 대표 김미경(55·여)씨는 “주로 영국에서 들여온 앤티크 제품들”이라고 소개했다.

정발산역 인근에 생긴 ‘보넷길’
앤티크 제품 직수입 20여 곳 밀집
매년 현지로 나가 고가구 등 공수
1년 전 거리 이름 짓고 합동 마케팅
30일엔 가게별 대표상품 ‘벼룩시장’

 바로 옆 가게인 ‘미세스빈티지’. 1층 상가를 개조한 가게 안에 옷장·수납장·침대·유리잔 등이 가득하다. 김영희(53·여) 대표는 “대부분 70~80년 이상 된 앤티크 제품들”이라며 “1년에 두 차례 영국·독일·프랑스 등을 방문해 직수입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일산신도시 정발산역 인근 주택가에 자리잡은 ‘보넷길’ 풍경이다. 밤가시마을 8, 9단지 일대다. 이곳엔 반경 500m 안에 유럽 앤티크 전문점과 관련 가게 20여 곳이 들어서 있다. 요란한 간판도 없고, 나서서 알리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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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매니어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유럽 앤티크 제품을 판매하는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 앤티크는 서울 인사동, 유럽 앤티크는 일산 보넷길”이란 말이 있을 정도다. 대부분 1년에 한두 차례씩 해외에 직접 나가 물건을 골라오는 점포들이어서 며칠씩 문을 닫는 가게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보넷길의 원조는 2006년 문을 연 ‘유로앤틱’이다. 독일·프랑스 등에서 들여온 옛 가구와 도자기·유리잔·스탠드 등을 취급했다. 한동안 외롭게 운영하다가 2012년부터 비슷한 점포가 인근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가게가 10곳으로 늘어난 뒤 업주들이 뭉쳤다. 힘을 합쳐 명소로 띄워보자는 것이었다. 우선 이름 짓기부터 시작했다. 모두 ‘보닛(bonnet)’을 쓰기 좋아한다는 점에 착안해 ‘보넷길’로 부르기로 했다. 보닛은 근대 유럽과 미국의 여성들이 쓰던 턱끈 달린 모자다. ‘유럽 앤티크’를 상징하는 의미가 있어 별다른 이견 없이 채택됐다.

 1년 전인 지난해 10월, 단지 안 잔디밭에서 공동 할인행사인 ‘벼룩시장’을 열고 보넷길의 탄생을 알렸다. 또한 마을 지도 5만 부를 만들어 돌렸다. 디자인은 미술을 전공한 점포 주인의 딸이 했다.

 가게들은 철저히 ‘함께 살기’를 택했다. 손님이 원하는 물건이 자기 가게에 없을 때는 다른 가게를 소개해 준다. 가게들이 뭉쳐 20∼30% 할인 판매를 하는 ‘보넷길 페스티벌’도 가끔씩 개최한다. 그러면서 손님이 늘었다. 이젠 점포 주인이 월세를 올려달라지 않을까 슬슬 걱정할 정도가 됐다.

 독특한 점포도 문을 열고 있다. 유럽 빈티지 가구와 더불어 일본 직수입 구두를 판매하는 ‘블루보넷’, 프랑스 자수 공방 ‘몬 아뜰리에’ 등이다. 브런치와 수제 햄버거 등을 파는 음식점도 들어섰다. 전문 요리강사가 운영하는 ‘키친데일리’는 한식부터 양식·일식까지 매일 다른 메뉴를 선보인다.

 오는 30일에는 보넷길 잔디밭에서 다시 한 번 벼룩시장을 연다. 프랑스 가구점 ‘데일리스위트’ 김수희(57·여) 대표는 “가게별로 대표 상품을 값싸게 내놓고, 일부 점포에서는 기념품도 증정하는 자리”라고 소개했다.

글=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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