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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북·중 관계 악화, 우리에게 득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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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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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평양에서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 행사가 열리던 10월 10일 저녁, 필자는 베이징에서 소위 ‘전통파’라 불리는 중국의 북한 전문가들과 최근 북·중 관계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기회를 가졌다. 놀랍게도 이들의 인식은 한국 측과 사뭇 달랐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북한과 중국이 더 이상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가 아니며 현재 최악의 상태에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을 포기한 것은 아니며 관계 개선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 측이 북·중 관계를 지나치게 아전인수로 해석, 심각하게 왜곡해 보고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로 ‘최용해 홀대설’을 들었다. 중국 정부가 9월 3일 전승절 열병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앞줄 전면에 내세운 반면 최용해 북한 특사를 뒷줄 구석 자리에 배치한 것이나 시 주석이 최용해와 면담조차 하지 않는 등 홀대했다는 한국의 언론 보도는 한마디로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일개 당 비서임에도 최고지도자급 외빈으로 예우했고 중국 고위 당국자들과 충분한 협의 기회도 가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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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이 10월 1일 중국 국경절 행사에 ‘달랑 두 문장뿐’인 축전을 보냈다는 비아냥 조의 한국 언론 보도에도 이들은 비판적이었다. 두 문장에 들어갈 내용은 다 들어가 있는 데다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기해 시 주석이 김정은 제1비서 앞으로 장문의 축전을 보내 김정은의 집권 능력을 일정 부분 인정하고 힘을 실어 줬음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향후 북·중 관계에 대한 예단은 금물이라고 했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9월 3일 방중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한국과 중국 간에 다양한 채널의 전략대화를 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힌 것에도 토를 달았다. 시 주석이 강조한 것은 ‘자주적’ 평화통일이라며 한반도 통일은 남북한 당사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중국·미국을 끌어들일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남측이 북·중 관계에 대해 뜬구름 잡는 이야기도 그만해 줬으면 좋겠다는 주문 역시 잊지 않았다. 얼마 전 한국의 한 일간지가 보도한 중국의 북한 ‘지역 분할 안정화군’ 운용 제안을 일례로 들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종전 후 북한 지역을 미국·중국·러시아·한국 4개국이 분할 통치하자는 제안을 중국이 미국 측에 보냈고, 주한미군사령관은 이를 한국군에 협의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한국 측이 거부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근거 없는 허황한 보도는 북한을 자극할 뿐 아니라 한·중 관계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이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지난해 10월에 이어 8월 중국군이 북·중 접경 지역에서 실시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두고 한국에서는 이를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중국의 대북 군사개입용 훈련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한·미 연합전력이 북한 급변사태를 빌미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보나 안정화 작전을 위해 북한 영토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려는 시도에 대비하기 위한 훈련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하다는 취지였다.

 이들의 시각을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북·중 관계 악화는 한국에 득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다. 도리어 북·중 관계가 개선돼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만 남북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되고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원유 공급 중단 등 제재와 압박만으로는 출구 마련이 어렵다. 이제 한국 정부도 한·중 관계와 북·중 관계를 제로섬으로 보는 냉전적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마 한·중 관계 우위론을 주장하는 세간의 시각보다 이러한 전통파 분석이 중국 정부의 공식 노선에 더 부합하는 게 아닌가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는 중국 측 기대와 거리가 있어 보인다. 중국 정부는 권력서열 5위인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평양에 보내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고, 예상됐던 북한의 로켓 발사 중지를 얻어 냈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 지도부는 내심 박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6자회담 재개 등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큰 변화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우리 정부의 ‘제재와 압박을 위한 국제공조’가 정상회담의 핵심 메시지로 남았기 때문이다.

 베이징과 서울, 베이징과 워싱턴의 이러한 엇박자가 앞으로 어떠한 파장을 불러올지 자못 염려스럽다. 이제 아전인수적 상황 인식에 따른 외교 행보는 피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한반도 및 동북아 외교를 성공적으로 전개하기 위해서는 국제환경과 안보 현실에 대한 보다 냉철한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