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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단색화의 세계미술사 도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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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호 29면

지난 5일 홍콩에서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47억 2100만원에 낙찰된 김환기의 점화‘19-Ⅶ-71 209’.

미술품 가격과 작품성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최고가 작품이 최고작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세계 미술경매 사상 최고 금액’ 발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의 보편적 가치를 재는 잣대가 돈일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부가가치가 큰 투자처로서 잉여 자본이 쏠리는 미술시장은 오늘날 극심한 부의 편중 현상과 국력을 확인시켜주는 현장이다.


지난 5일 홍콩에서 열린 서울옥션의 해외 경매에서 국내 미술품 값의 새 기록이 나왔다. 김환기(1913~74)의 ‘19-Ⅶ-71 209’가 47억 2100만원에 낙찰되며 2007년 박수근의 ‘빨래터’가 세웠던 45억 2000만원을 제쳤다. 미술계는 가격보다 작품에 더 의미를 뒀다. 한국적 소재와 미감으로 평가받았던 박수근을 밀어내며 서구 추상화의 흐름에 가까운 단색화(單色畵)가 부상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국내외에 불기 시작한 단색화 열풍이 굵직한 점 하나를 찍은 셈이다.


김환기는 해방 이듬해에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로 임명된 한국화단의 주요 인물이었지만 기득권을 버리고 1963년 미국 뉴욕으로 떠날 만큼 자기 그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화가였다. 그는 65년 1월 13일 일기에 “점화가 성공할 것 같다. 미술은 하나의 질서다”고 썼다. 이번에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이 점화(點畵)다. 점화의 탄생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친구였던 시인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 나오는 구절이야말로 그의 심경을 대변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이렇게 정다운/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 붓을 들면 온통 점만 찍는 이유를 그는 1970년 제1회 한국미술대상 수상 소감에서 “그리운 친구들을 연상하며 점을 그렸다”고 말했다.


김환기의 점화가 이렇듯, 한국의 단색화는 서구의 모노크롬 회화와 다르다. 국제 미술시장이 한국 단색화의 고유한 특성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최근 서울에 온 저명 미술사가 데이비드 조슬릿(뉴욕시립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은 특강에서 “한국의 단색화가 미술 분야에서 국가 정체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고 평했다. 세계미술사에 한국 미술이 번듯하게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청신호가 켜졌는데 정작 준비는 없었다. 며칠 전 출간된 서진수 편저의 ?단색화 미학을 말하다?는 이런 상황을 반영하고 있지만 마음만 급했던 듯 보인다. 영문판까지 계획하고 있는 저술로는 한국 단색화의 전모를 보여주기에 부족한 감이 있다. 최고가 기록에 환호하기 이전에 우리 단색화의 고유한 미학과 진화에 대한 이론적 뒷받침, 제대로 된 영어 자료가 절실하다.


정재숙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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