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여도초 학생들이 거리 집회 나서는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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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를 열고 싶은데 선생님께 여쭤보니 경찰서에 먼저 신고를 해야 한다고 해서요."

지난 12일 오후 전남 여수경찰서 3층 정보계 사무실로 초등학생 4명이 찾아왔다. 여수시 봉계동 여도초등학교 5학년이자 전교 어린이회 부회장인 이모(12)군과 친구들이었다.

이군 등은 집회 신고 담당 경찰관에게 경찰서에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고선 볼펜으로 '옥외집회 신고서' 양식의 빈칸을 채워나갔다. 집회 개최 목적은 '여수시의 사립 외국어고등학교 설립 반대', 일시는 '10월 15일부터 30일까지(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장소는 '여수시청과 학교 앞 인도'라고 또박또박 적었다.

이군 등은 집회 신고서 작성 요령을 안내해준 경찰관에게 "회의에서 우리 학교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토의했다"며 "집회를 열어 피켓을 들고 종이(유인물)를 나눠주며 어른들에게 우리의 생각을 알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군 등 여도초 5학년 2반 학생들은 지난 7일 여수시가 추진 중인 사립외고 설립 문제를 안건으로 한 학급 어린이 회의를 열고 토의 끝에 집회를 결정했다. 여수시의 계획은 여도초 옆 여도중학교를 옮기고 그 자리에 사립외고를 짓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교육 여건이 떨어지는 다른 중학교에 가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는게 학생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여도초와 여도중은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주요 기업 20개사가 임직원 자녀들을 위해 학교법인 여도학원에 매년 내놓는 총 37억원으로 운영되는 사립학교들이다.

여수시는 여도초를 공립화하고 여도중은 없애거나 공립화와 함께 이전한 뒤 해당 부지에 사립외고를 설립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이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주철현 여수시장은 "여수 지역 인재가 타 지역으로 유출되고 있어 사립외고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수시 관계자는 "매년 여수 지역 중학교 3학년 학생들 가운데 200여 명이 좋은 학교를 찾아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실정"이라며 "장기적인 안목에서 사립외고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새 부지와 건물을 마련하려면 비용이 500억~600억원이 들기 때문에 여도중 부지와 건물을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수=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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