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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집으로 가는 길, 미래로 가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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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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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서부전선’과 미국영화 ‘마션’은 간절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서부전선에서 우여곡절 끝에 소련제 ‘땅크’에 함께 타게 된 국군 병사(설경구)와 북한군 병사(여진구)는 한국전쟁 휴전 직전 3일 동안 전장을 헤매고 다닌다. 두 사람의 소원은 고향집으로의 무사귀환이다. 그런데 남과 북의 싸움 때문에 그 일이 쉽지 않다. 두 병사의 치열한 주도권 쟁탈전 속에서 땅크는 북진과 남진을 번갈아 하다 결국 남과 북의 경계선에서 멈춘다. ‘마션’은 화성에 홀로 남겨진 우주인(맷 데이먼)의 생존과 지구 귀환 시도가 줄거리다.

 서부전선은 60여 년 전의 전쟁이 배경이지만 시대극이 아니다. 이념의 대립이 불러온 싸움의 헛됨을 냉소하는 현재형의 블랙코미디다. 영화에는 북한에 대한 적개심에 가득 찬 국군 간부, 부하의 희생을 되도록 줄이려는 다른 국군 간부가 조연으로 등장한다. 남북 대치 안에서의 남남 갈등은 그렇게 묘사된다.

 역사 교과서 논란 속에서 이 영화의 땅크와 두 군인을 떠올린다. 어느 한 쪽으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전장을 맴돈다. 현실과 미래가 소모된다.

 ‘마션’에서도 주인공은 집으로 가기 위해,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런데 그 속에는 미래가 있다. 인류의 다른 행성에서의 생존 가능성이 표현돼 있고, 미국과 중국의 벽을 허문 우주 협력이 등장한다. 주인공이 집으로 가는 길이 곧 미래로 가는 길이다.

 이 영화는 공상의 산물이 아니다. 실제로 미국에는 화성으로의 인류 이주를 꿈꾸는 이가 있다. 막연히 꿈만 꾸는 게 아니라 막대한 투자를 하며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 모터스와 우주항공업체 스페이스X를 만든 일론 머스크(44)다. 그는 지구의 자원고갈, 인공지능들의 반란을 걱정하며 담대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머스크에 대한 전기를 쓴 애슐리 반스는 그의 창조성의 원천을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우리는 역사 교과서의 단편적 지식을 외운다. 좌편향이든 우편향이든 마찬가지다. 질문은 매우 비효율적인 행위다. 고교 역사 시험이 선다식이나 단답식으로 치러지는 나라가 얼마나 될까. 최소한 직접 본 미국·영국·프랑스의 시험은 역사적 지식·해석·시각을 버무려 쓰는 서술식이다. 갈등 전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역사 교육 싸움, 38선 주변을 맴도는 소련제 땅크처럼 답답하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