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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의 또 다른 변수, 말싸움도 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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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은 승리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까.

2015 시즌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준PO)는 '설전(舌戰)'으로 달아올랐다. 두산에 1·2차전을 모두 내준 염경엽(47) 넥센 감독은 지난 11일 "자꾸 두산에서 자극을 한다. 깨끗하게 야구를 하고 싶은데 어렵다"고 말했다. 2차전 8회 초 오재원(30·두산)이 서건창(26·넥센)의 진로를 막아 언쟁이 붙자 양팀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전부 달려나와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다. 궂은 날씨 때문에 조명을 켜 달라는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심기가 불편했던 염 감독은 수십 명의 기자들 앞에서 작심발언을 했다. 김태형(48) 두산 감독은 염 감독의 발언을 듣고 어리둥절해 하며 재차 "무슨 뜻인가"고 물었다. 신중해진 김 감독은 "중요한 단기전에서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도 모두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앞으로 선수들에게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주의시키겠다"고 말했다. 염 감독이 도발했지만 김 감독은 흥분하지 않았다.

내일이 없는 단기 승부에서는 설전을 통해 상대의 기를 꺾으려는 고도의 심리전이 펼쳐진다. 신경을 긁는 발언으로 상대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어 경기의 흐름을 유리하게 끌고 오면 성공이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09년 한국시리즈다. 당시 정규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KIA의 상대는 2년 연속 우승한 SK였다. 정규리그 2위였지만 가을야구에 강한 SK는 벅찬 상대였다.

KIA는 한국시리즈 전부터 SK와 신경전을 벌였다. 먼저 'SK 2루 주자가 포수 사인을 훔친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김성근 SK 감독은 "사인을 훔치는 게 아니라 데이터를 면밀하게 분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설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차전에서는 김동재 KIA 코치가 "경기 중 관중석에 있는 SK 전력분석팀이 수비 위치를 조정한다"고 항의했다. 김 감독은 "그럼 내가 왜 벤치에 있나"며 반발했다. KIA는 1·2차전에서 모두 승리를 거뒀다. 김성근 감독은 "두 경기 모두 꼬인 느낌을 받았다"며 갑갑해 했다. 결국 2009년 우승팀은 4승3패를 거둔 KIA였다.

스포츠 심리학자인 이건영 박사는 "정규리그 같은 장기전에서는 한 경기에 일희일비하지 않지만 반드시 이겨야 하는 단기전에서는 모든 방법이 다 동원된다. 특히 말을 이용한 심리전이 유용하게 쓰인다"며 "수장인 감독이 사용할 때 효과가 배가된다. 사기가 저하됐을 때 감독의 단호한 말 한 마디가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염 감독도 "선수들에게 특별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분명 느끼는 것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전 전략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11년 롯데와 SK가 만난 준PO에서는 강민호(30·롯데)가 먼저 "SK의 사인 훔치기에 대해 준비를 많이 했다. 단속을 잘 하면 상대가 정확히 훔치지 못할 것"이라고 도발했다. 이에 박정권(34·SK)은 흥분하지 않고 "우리는 그런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롯데는 SK에 2승3패로 졌다. 이건영 박사는 "설전 전략을 쓸 때는 '머리는 냉철하게, 감정은 적당하게' 해야 한다. 상대의 평정심을 잃게 만들려다가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하면 오히려 팀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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