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불패신화 깨려는 도전들, 꽃피웠으면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김형구 기자 중앙일보 기자
기사 이미지

김형구
정치국제부문 차장

추석 연휴 직전 광주광역시 송정역 앞에서 나를 태운 택시기사 안모(43)씨. 서울에서 내려온 정치부 기자란 사실을 알아낸 그는 대뜸 새누리당 이정현(순천-곡성) 의원 얘기를 꺼냈다.

 “이 의원이 지역 예산 따내려고 열심히 댕기는 거 같습디다. 광주 사람도 많이들 알아요. 이 의원이 광주서 출마하믄 한 표 찍어 주고 싶은디….”

 지난해 7·30 재·보선 때 새누리당 정치인이라면 막대기 하나 들어갈 데 없을 듯했던 호남에서 기적을 이뤄 낸 이 의원에 대한 지역민들의 호감을 읽을 수 있었다.

 거꾸로 야당 무덤이라는 대구에선 김부겸 전 의원이 표밭을 일구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경기도지사 출신 새누리당 김문수 전 의원과의 승부가 쉽진 않겠지만 해 볼 만한 싸움은 될 듯하다.

 지난 7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등 굵직한 이슈에 가려 큰 조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눈길을 끄는 출사표 하나가 있었다. 전현희 전 민주당 의원의 서울 강남을 출마 선언이다. 그는 “여당의 ‘강남불패 신화’에 도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18대 국회 때 비례대표 의원이었던 그는 치과의사에 변호사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의 스타 정치인이었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해 아직 부산 억양이 남아 있는 전 전 의원의 대변인 시절 한 당직자가 했던 말도 기억난다. “민주당에선 호남 사투리가 거의 8할인데 영남 사투리를 쓰는 전문직 출신 대변인은 당에서 일부러라도 키워 내야 한다”고 했다.

 전 전 의원의 강남 도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야당 정치인에겐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인 강남에 뛰어든 이유가 궁금했다. 그를 만난 자리에서 “혹 강남에서 당선되면 그 힘으로 나중에 더 큰 도전도 하겠다는 플랜이 있는 거냐”고 물었다. 전 전 의원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렇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사지(死地)에 뛰어들 때 그만한 정치적 계산이 왜 없겠는가 싶다. 척박한 험지에서 꽃을 피운다면 한 방에 정치적 주목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승산 없는 게임에 ‘아무나’ 정치 생명을 걸지는 않는다. 나는 정치인들의 ‘무모한 도전’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 지역주의의 아성, 진영의 아성을 무너뜨리겠다는 시도가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벽을 넘어서려는 수많은 도전이 한 번의 기적을 낳고 마침내 둑이 터지면 변화의 대세가 되지 않던가.

 2007년 2월 당시 46세로, 미국 연방 상원의원이 된 지 3년차에 불과했던 한 흑인 정치인이 대선 도전을 선언했을 때 그의 대통령 당선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변화(change)’를 반복해 외치던 버락 오바마는 끝내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됐다. 지금은 재선 대통령이다. 물론 미국과 우리의 정치 현실이 다르다. 하지만 기적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불가능’해 보이는 판에 달려드는 용기, 그리고 그것을 ‘가능’으로 바꾸는 역량의 어우러짐이 함께 있기 마련이라는 건 다르지 않을까 싶다.

김형구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