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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사드에서 푸틴의 전쟁으로 … 국제전된 시리아 내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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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호 10면

그렇지 않아도 얽히고설킨 시리아 내전 사태가 러시아의 무력개입으로 더욱 복잡한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지시로 러시아군은 9월 30일 시리아 반군에 대한 공습을 개시했다. 반군의 저항에 밀려 곤경에 빠진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정부군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계기로 ‘알아사드의 전쟁’이 ‘푸틴의 전쟁’으로 변질돼 가는 양상이다. ‘자원병’이라고 주장하는 러시아 지상군까지 시리아에 파병해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신(新)냉전화하거나 내전이 중동 지역 전체로 확전해 국제전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러시아군이 시리아 온건파 반군을 지원하고 있는 미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과 교전을 벌이는 것이다. 자칫하다간 세계 최대 군사강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대리전을 넘어 직접 맞붙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카스피해 해군함정서 순항미사일 발사아직은 대대급 규모로 추정되는 러시아 지상군은 터키 국경에 가까운 시리아 북부 라타키아 공군기지 주변에 배치됐다. 이들은 로켓포와 최신형 탱크, 방공 시스템과 공격용 헬기 등으로 중무장해 있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서방 언론은 전한다. 지상군이 단순히 러시아 공군기지 방어 이상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리아에 러시아 지상군이 들어오면서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 자치공화국 합병과 동부지역에서의 무력개입 때와 비슷한 ‘스텔스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이뿐만 아니라 지중해에 함정 10척을 배치하고, 시리아에서 1500㎞ 떨어진 카스피해 전함에서 중거리 순항미사일을 반군 지역에 발사하는 등 무력 공격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지난 3일과 4일에는 러시아 군용기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가인 터키의 영공을 두 차례나 침범해 거센 항의를 받았다.


올해로 5년째를 맞는 시리아 내전은 러시아의 참전이라는 돌발변수로 더욱 풀기 어려운 고차 방정식이 돼버렸다. 내전 사태는 2011년 초 ‘아랍의 봄’ 바람을 타고 알아사드의 철권 독재통치에 반발하는 반정부 시위로 출발했다. 민주 대 반민주 대결 구도에 종파·정파 간 갈등이 기름을 부었다. 40년 넘게 정권을 독점하고 있는 알아사드의 시아파는 시리아 국민의 13%에 불과한 반면 74%에 달하는 절대다수는 수니파다.


내전이 더욱 복잡하게 전개된 건 수니파 반군이 단일대오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알아사드 정부군과 싸우는 반군에는 온건파와 자유시리아군, 알카에다의 분파인 알누스라 전선, 극단주의 세력인 이슬람국가(IS)가 혼재해 있다.


여기다 수니·시아파로 갈라져 대립해온 중동 국가들의 ‘원천적인 대결 구도’가 시리아 내전을 중동 지역전쟁으로 번지게 만들었다. 시아파의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은 레바논의 시아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함께 알아사드 구하기에 적극 나섰다. 이에 맞서 수니파 대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 그리고 카타르 등은 인적·물적으로 시리아 반군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IS가 주도하는 극단주의 지하드(성전)에 인근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의 수니파 무슬림들이 자발적으로 가담하는 새로운 모습의 전쟁도 선보였다. 유럽이 자신의 앞마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대 내전’에 속수무책으로 수수방관하는 사이 미국은 사실상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개입은 이미 엉켜 있는 실타래를 다시 한번 휘젓는 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 시리아 내전 사태는 이제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블랙홀이 돼버렸다. 지금까지 25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고 인구 1800만의 절반 이상을 국내외 난민으로 내몬 내전의 긴 터널은 출구를 찾기는커녕 점점 더 깊은 미로로 빠져들고 있다. “푸틴, 국내 불만 무마 노려 개입” 분석도 온건파 반군을 지원하는 미국의 입장은 분명하다.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이다. 군사력으로 시리아 정부군을 물리치지 못하더라도 협상을 통해 알아사드 대통령을 퇴진시키겠다는 계산이다. 알아사드 정부군 못지않게 위협적인 세력인 IS 반군의 퇴치도 주요 목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년간 이어지고 있는 시리아 정부군과 IS에 대한 공습, 온건 반군에 대한 무기지원이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서다. 그러던 차에 러시아의 공습이 시작되자 오바마 정부로서는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겉으로는 IS를 공격한다는 러시아가 미국의 대리자 격인 온건 반군에게까지 광범위한 공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마이클 맥플 스탠퍼드대 교수는 “현재로서는 (오바마 정부에) 별다른 해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이 시리아 내전 개입을 통해 노리는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지금 수준의 러시아군 공습으로는 IS를 포함한 반군을 완전히 물리치기는 어렵다. 기껏해야 현상 유지 내지는 약간의 타격을 입혀 알아사드 정권의 산소호흡기 가동을 늘려주는 정도일 것이다.


푸틴의 노림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관측이 나온다. 시리아에 해·공군 기지를 두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못지않게 시리아의 전략적 가치가 높다. 알아사드 정권을 통해 전략적 자산을 지켜내겠다는 것이 물론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일 것이다.


이면에는 러시아 국내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작전이라는 시각도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초 크림반도를 강제로 빼앗다시피해 미국과 유럽 중심의 강력한 제재를 받았다. 이에 따라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경제가 가라앉기 시작하면서 푸틴은 국내에서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됐다. 이에 따라 푸틴은 자신에 대한 화살을 시리아로 돌리려 한다는 것이다.


크림 합병에는 성공했으나 우크라이나 동부에서의 친러시아계 군사지원 작전엔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도 푸틴에게는 부담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한 위험한 도박에 나섰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럽뿐 아니라 중동에서도 러시아의 강력한 무력을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 한다는 시각이다. 푸틴에게도 군사 개입은 위험한 도박군사 개입에 나선 푸틴에게도 위험 부담이 적잖다. 일시적으로 군사적 주도권을 잡더라도 결국엔 부족·종파 전쟁에 휘말려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NYT는 사설을 통해 “푸틴은 복잡하게 얽힌 수렁과도 같은 시리아에서 장기적으로 군사적 행동을 할 수 없으며 내전을 종식시키기 어렵다”며 “미국과 러시아는 힘을 합쳐 IS를 격퇴시키고 휴전을 이끌어낼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시리아 군사 개입은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비교되기도 한다. 아프간 침공과 그에 따른 경제적 타격은 소련의 몰락을 앞당겼다. 러시아의 시리아 시아파 정권 지원은 중동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수니파 국가들의 거센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럴 경우 러시아는 중동에서의 영향력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시리아 내전에는 시리아뿐 아니라 주변 중동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최근 러시아의 군사개입을 바라보는 시각도 제각각이다. 시리아·이란·이라크 등 시아파 정권 국가들은 러시아의 개입을 반기고 있다. 반면 사우디·터키·카타르 등 수니파 국가들은 위기의식을 느낀다.


미·러 접점 못 찾으면 내전 장기화시아파 종주국을 자처하는 이란은 알아사드 정권의 최대 후원자다. 이란 외무부는 “러시아의 공습은 테러리즘을 뿌리 뽑으려는 국제적 협력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환영했다. 그동안 시리아 정부군에 혁명수비대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고 무기를 공급해온 이란은 최근 지상군을 파병했다고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이란은 그러나 시리아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과의 직접대화에는 반대한다. 이란 핵협상 타결 이후 이란의 역할론이 강조되고 있지만 이란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이라크에서도 러시아의 개입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라크의 일부 의원과 민병대 조직은 러시아가 자국 내 IS 공습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IS는 주요 유전지대를 포함해 이라크 영토의 4분의 1을 점령하고 있다. 미국이 지금까지 주도해온 공습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하이데르 알아바디 총리 정부는 IS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이란·러시아·시리아와 정보공유협정을 맺었다.


반면 수니파 맹주 사우디는 가장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사우디는 당장 급한 불인 남부 접경국 예멘 사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사우디 왕실은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가 올 초 수니파 정부를 몰아내고 수도 사나를 점령하자 무력개입에 나섰다. 많은 전비를 부담하며 직간접적으로 예멘의 수니파를 지원했지만 전과는 미미했다. 사우디의 주요 성직자들이 러시아에 대한 성전과 시리아 반군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지만 그럴 형편이 못된다.


터키는 지난주 러시아의 영공침해에 강력히 항의하면서 경계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개입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러시아는 큰 실수를 범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렇게 복잡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이다. 양국 간 ‘빅 파워 게임’으로 확전할 경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대리전에 말려드는 것을 꺼리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단 직접 충돌을 막기 위해 더 많은 대화를 하기로 합의했지만 미국은 러시아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IS에 대한 러시아와의 정보공유에도 반대한다. 미국과 러시아가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시리아 내전은 중동을 장기간 수렁에 빠뜨리는 것은 물론 미·러시아 양국 간 ‘광범위한 전쟁’으로 확산할 수 있다. 현재로선 5년 내전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태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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