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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노벨과학상 비결은 실패·괴짜 인정한 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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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호 31면

‘21 대 0’. 일본과 한국의 자연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 성적표다. 일본인이 올해도 노벨 물리학상과 생리의학상을 받으면서 한국에서는 “왜 우리는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느냐”는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연구비를 더 투입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시각에는 “노벨상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일본이 많은 수상자를 배출한 배경에는 ‘괴짜’가 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있기 때문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장인정신을 존중한다. 여러 번 실패해도 꾸준히 도전하고 장기적인 연구 활동이 가능한 환경이다. 물론 국가나 기업의 지원도 많다.


일본은 반드시 도쿄(東京)대학 출신 엘리트가 아니라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다. 학창시절 성적은 전 과목 A학점을 받지 않아도 된다. 수학이나 물리학 성적이 뛰어나지만 다른 과목 성적은 신통치 않은 사람도 많다. 부모나 교사는 “국어도 사회도 모두 A학점을 받으라”고 압박하지 않는다. 각자의 우수 분야에서 재능을 펼치도록 독려한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에서 혼자 몰두하는 연구자가 그 직업을 이유로 결혼을 포기하거나 장래를 비관하지 않는다.


일본에 비해 한국은 많이 다르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한국에서 생활한 지 2년 반이 된다. 아들은 2년간 한국 유치원에 다녔고 지금은 한국 아이들과 섞여 영어·주산·수영·축구 등을 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런 생활을 통해 한국이 얼마나 힘든 경쟁 사회인지 날마다 피부로 느낀다.


아들은 매주 2시간 코스의 영어 학원을 다니는데 매주 숙제가 있고, 매달 테스트가 있다. 그래도 이 학원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학습 부담이 아주 작은 학원으로 알려져 있다. 유치원에서는 좋은 일을 하면 ‘칭찬 스티커’를 받는다. 아이들은 누가 몇 장을 받았는지 무의식 중에 경쟁한다. 일본인들이 많이 사는 서울 동부이촌동에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진학할 땐 경쟁이 심한 한국 학교 대신 거의 모두 일본인 학교에 입학한다.


한국인들은 치열한 경쟁을 끝없이 계속하며 산다. 대학 입시 성적이 평생 따라다니고, 대기업 취업 여부가 결혼 여부를 좌우한다. 승자와 패자의 경제 격차는 아주 크고 인생을 만회할 기회는 지극히 적다. 평생 경쟁을 계속해야 하는 사회 구조에서는 실패를 되풀이하면서 장기간 기초 연구를 하는 사람을 키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이런 치열한 경쟁 사회에는 강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과 함께 일해본 일본인들은 흔히 “한국인은 마지막 집중력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긴장감을 이기고 뭐든 해낼 수 있는 이런 집중력이 한국 발전을 지탱해온 원동력 아닐까.


매년 노벨상 발표 시즌 때마다 “한국에서는 왜 한 명도 안 나오나”라는 질문이 반복된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한국에는 한국만의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한국답게 빛나는 길을 찾기 바란다.


오누키 도모코마이니치신문 서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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