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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터슨, 화장실서 흉기 기습” “당시 거짓말탐지기 통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1997년에 발생한 ‘이태원 햄버거가게 살인사건’의 주범으로 기소된 아더 존 패터슨(36·사건 당시 18세)의 첫 재판이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 심규홍) 심리로 열렸다. 당시 증거인멸 혐의만으로 구속 기소돼 1년가량 복역하다 석방된 그는 이번엔 살인 혐의로 17년 만에 다시 한국 법정에 섰다.

‘이태원 살인 사건’ 17년 만에 재판
피해자 부모 “범인 밝혀 한 풀어야”
에드워드 리 부친 등 법정 꽉 채워

 이날 오전 10시40분 417호 대법정. 녹색 수의를 입은 패터슨이 입장했다. 입국 때 보였던 수염은 깨끗이 면도한 상태였다. 피고인석에 앉은 그는 긴장한 표정으로 방청객을 둘러봤다. 방청석 100여 석이 꽉 차 있었다. 그중엔 피해자 조중필(당시 22세)씨의 부모도 있었다. 또 사건 당시 주범으로 기소돼 98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에드워드 리(36)의 아버지도 참석했다.

 이날은 검찰과 변호인 측이 각기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향후 재판 일정을 정리하는 준비기일이었다. 하지만 양측은 범행의 쟁점을 다투며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먼저 검찰이 포문을 열었다. “패터슨은 97년 4월 3일 오후 10시쯤 서울 이태원 소재 한 햄버거가게 화장실에서 조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숨지게 했고 리는 범행에 가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패터슨은 당시 머리·손 등 전신에 피를 뒤집어쓴 반면 리는 옷과 신발에만 소량의 피가 묻어 있었다”고 근거를 댔다. 또 “애초 수사 검사가 리를 주범이라고 판단한 근거가 된 부검의의 추정은 ‘조씨에게 반항한 흔적이 없어 범인은 조씨를 제압할 정도로 덩치 큰 사람’이란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사건 당시 조씨는 혈중 알코올농도 0.1% 이상의 만취한 상태로 소변을 보다 공격당한 것이어서 몸집이 작은 패터슨도 피해자를 칼로 찌를 수 있다고 판단된다”며 패터슨의 유죄를 주장했다.

 반면 패터슨 측 변호인은 패터슨의 살인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오병주 변호사는 “18년 전 패터슨은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정확한 진실 반응을 보였고 리는 혈압과 맥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현저한 거짓말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리를 범인으로 재차 지목했다. 또 “패터슨은 하얀색 티셔츠를 입고 있어 피가 많이 묻어 보일 수밖에 없었고 리의 셔츠는 ‘다크블루(어두운 파란색)’인 데다 닷새가 지난 시점에 압수돼 이미 세탁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오 변호사는 “패터슨에게 여러 차례 ‘조씨를 죽였느냐’고 물었으나 ‘결단코 죽이지 않았다’는 답만 들었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구속사건 처리지침에 따라 6개월 안에 재판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22일 오후 2시 2차 기일을 열어 준비 절차를 마무리하고 다음달 4일 본 재판을 열기로 했다.

 1시간30분의 재판이 끝난 직후 조씨의 어머니 이모씨는 “범인이 꼭 밝혀졌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과 중필이의 한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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