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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사도세자는 영화 '사도'의 유아인처럼 날씬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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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 스토리는 지금까지 많은 영화·드라마로 다뤄졌다. 더 이상 특별할 것 같지 않은 이야기가 다시 한번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있다. 영화 ‘사도’가 개봉 16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사도세자의 무덤 융릉에는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유아인이 연기한 사도세자는 처연하고 안쓰러워 사람들은 더 연민을 느낀다. 그래서 실제 역사 속 사도세자의 모습이 더욱 궁금해진다. 영화 속 장면은 어느 정도 근거가 있을까? 『조선왕조실록』, 『한중록』 를 통해 그 장면의 진실을 알아봤다. 단, 두 역사서의 기록이 진실이라는 전제에서다.

Scene 1 사도세자가 영조를 죽이러 가는 장면은, 진실 or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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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쇼박스]

----------------> 진실

영화의 첫 장면, 사도세자가 아버지인 영조의 처소로 칼을 들고 침입한다. 이 장면은 사료를 반영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나경언의 고변 이후 사도세자는 영조에게 나경언과의 대질을 청하지만 영조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 『한중록』에 의하면 사도세자는 석고대죄를 하지만 영조에게서는 아무 반응이 없다. 불안감이 증폭된 사도세자는 극도의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며 영조가 있는 경희궁으로 향했다가 되돌아 왔다고 한다.

이밖에 『조선왕조실록』엔 사도세자가 자신의 후궁이자 은전군의 어머니인 경빈 박씨를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 사도세자의 총애를 받던 박씨는 그의 비행에 대해 자주 간언을 했고, 화가 난 사도세자는 결국 박씨를 살해한다. 이밖에도 사도세자가 내인, 노비 등 궐 안의 무수한 사람을 죽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죽은 사람의 머리를 들고 다니며 보여 주는 등 기이한 행동을 일삼았다고 한다.

Scene 2 홀로 잠드는 사도세자는, 진실 or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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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쇼박스]

----------------> 진실

영화에서 사도세자의 친모인 영빈 이씨가 ‘오늘은 같이 자면 안 되겠냐’고 하자 최 상궁은 ‘이제 너의 자식이 아니다’며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어린 사도세자가 홀로 손가락을 빨며 잠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사실이다. 실제 사도세자는 백일이 겨우 넘은 시기부터 저승전에서 홀로 지낸다. 『한중록』을 보면 영조는 한시라도 빨리 아들을 세자로 만들기 위해 저승전에 데려다놓고 영빈 이씨와 떨어져 지내게 했다.

Scene 3 어린 시절 영특했던 사도세자는, 진실 or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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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쇼박스]

----------------> 진실

영화에서 사도세자는 어린 시절 『천자문』을 읽다가 ‘사치할 치(侈)’자를 보고 자신의 비단옷을 가리키며 사치와 사치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영조는 이러한 영특함에 뿌듯해한다. 실제로도 사도세자는 입고 있던 옷과 구슬 꾸미개로 장식한 모자를 가리키면서 “이것이 사치한 것”이라며 즉시 벗어버렸다고 한다. 또 “비단과 무명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으냐”고 영조가 묻자 “무명이 더 낫다”면서 무명옷을 입겠다고 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있다. 사도세자는 만 2세 때부터 글자를 알았다. ‘왕’이라는 글자를 보고 영조를 가리키고 ‘세자’라는 글자에서는 자기를 가리켰으며, 천지·부모 등 63자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10세 무렵부터 학문에 싫증을 느끼고 자라면서 무인의 기질이 강해져 영조와 대립을 하게 되지만, 어린 시절 세자의 영특함은 영조의 기대를 한 몸에 받게 만들었다.

Scene 4 샤프하고 말랐던 사도세자의 모습은, 진실 or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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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쇼박스]

----------------> 거짓

비극적인 죽음 때문인지 미디어를 통해 그려지는 사도세자의 모습은 마르고 우수가 묻어나는 외모다. 이는 ‘사도’ 영화에서도 마찬가지. 아이돌급 외모의 유아인이 사도세자로 활약해 안타까운 마음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승정원일기』에 남겨진 기록을 보면 사도세자는 어려서부터 비만이었다. 영조는 “잘못해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몸이 무거워 다치기 쉬우니 걱정”이라고 할 정도였다. 사도세자와 사이가 안 좋아지면서 심한 말도 서슴없이 했는데 대신들 앞에서 “이 아이의 배 좀 보라”고 면박을 줬다. 또 “지난 번 가마 탈 때 보니 가마가 좁아 세자가 탈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동궁 시절에 타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중록』에도 사도세자의 체격에 대해 장대하고, 석대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Scene 5 영조에게 구박 받고 능행을 가지 못하는 장면은, 진실 or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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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쇼박스]

----------------> 진실

영화 속에서 사도세자는 비 오는 날 능행을 떠났다가 영조에게 구박을 받고 궁으로 돌아간다. 이는 『한중록』에 의하면 1758년 8월 1일, 사도세자가 처음으로 정순왕후와 인원왕후 능소에 참배 갔을 때의 일이다. 그동안 할머니와 어머니 묘소에 참배시키지 않았던 영조가 세자를 데리고 능행을 떠났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고, 영조는 “날씨 이런 것이 다 동궁 데려온 탓이다! 도로 들어가라!”고 했던 것. 기대하던 능행이 취소되자 세자는 울화가 치밀어 바로 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성문 밖 경기도 감영의 창고에서 마음을 다스린 후 왔다고 한다.

Scene 6 뒤주에 넣어준 부채는 사도세자가 그린 부채였는데, 진실 or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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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쇼박스]

----------------> 거짓

영화 속에서 사도세자는 정조의 태몽을 부채에 그린다. 그 그림을 장인 홍봉한이 부채로 만들어 뒤주에 넣어주고, 사도세자는 그 부채에 소변을 받아 마시며 우는 장면이 나온다. 『한중록』에 의하면 사도세자가 태몽을 꾸고 비단에 여의주를 문 용을 그린 건 사실이지만 그 그림으로 부채를 만든 설정은 각색이다. 사도세자가 죽은 후 뒤주에서 부채가 나왔는데 이는 영화에서처럼 홍봉한이 넣어준 것이 아니라 감시가 심해지기 전 대신들이 넣어준 것이다. 부채를 반으로 접어 오줌을 받아 마신 흔적도 있었는데 이는 영화에서 재연됐다.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참고=『조선왕조실록』, 『한중록』, 『승정원일기』,『권력과 인간』(정병설 저)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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