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사이 낀 한국, TPP 경제 국익만 따져 가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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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선 본래 주제가 아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 소식이 거론됐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도 늦게 가입했을 뿐 아니라 TPP도 뒷북치는 모양새가 돼 세계 경제 전쟁에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AIIB 가입을 결정하면서 미·중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일 당시의 ‘데자뷔(기시감)’가 느껴진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실기(失機)했다고 해서 무조건 빨리 들어가는 게 정답이 될 순 없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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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TPP는 경제 문제 =미국과 일본이 안보에 이어 ‘경제동맹’의 모양새로 중국을 봉쇄하는 구도가 형성된 것을 잘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세대 손열 국제학대학원장은 “일본이 미국과 안보·경제동맹을 함께하는 전략을 취했는데 우리는 ‘냉정하게 경제 국익만 따져 TPP 가입을 결정하겠다’는 것을 표방해야 한다”며 “안보 논리로 들어가면 중국 쪽에서 경제적으로도 미국에 밀착하려 한다는 논리가 나올 수 있다. 1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입장 정리를 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외교·경제전문가들의 조언
안보논리로 가면 중국 불만 우려
한?미 정상회담서 입장 정리해야
실기했다고 가입 서두르면 안 돼
미 국무부 “한국과 가입 논의 환영”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발표할 ‘한·미 관계 현황 공동설명서 ’에서 한국의 TPP 가입과 관련한 내용을 포함시킬 계획이다. 6일 한국을 찾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부장관은 조태용 외교부 1차관과 회담 후 기자회견을 열고 “TPP와 관련해 간략하게 논의했다”며 “미국은 한국과 TPP 가입 문제를 논의하게 된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② RCEP 등 활용하라=한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RCEP에는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호주, 인도, 뉴질랜드가 함께하고 있다. 또 한·중·일 FTA엔 3국 모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 이재현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TPP 협상에서 최대한 많은 선택지를 확보해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며 “이미 체결된 한·중 FTA를 TPP 협상에 적극 활용하고 다른 자유무역 협상에 적극 나서는 모습을 보여 미·일을 유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자유무역 공동체의 ‘교집합’ 격이 되면 한국이 이 과정에서 공동체 간 가교 역할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김성한 교수는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에 참석하는 국가들이 모두 TPP 창립 멤버인 만큼 이 무대를 잘 활용하면 TPP의 거버넌스나 룰 등이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지 파악하고 좀 더 빨리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③ 한·일 관계를 관리하라=한국은 TPP 12개 가입국 중 일본·멕시코를 제외하곤 모두 FTA를 맺고 있다. 한국이 TPP에 들어가려면 가입국 전원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일본과의 협상이 중요하다. 국립외교원 김한권 교수는 “TPP 협상은 이미 만들어진 틀 안에 들어가 협상을 하기 때문에 한국이 을(乙)의 입장”이라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에 우호적 입장을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서 일본과의 협상에 유연성을 발휘하는 발 빠른 행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지혜·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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