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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역사연구 서로 닮아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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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소장 역사학자들의 모임인 '한국역사연구회'에서 북한의 사학사(史學史)를 함께 공부해 온 8명의 연구자들이 '북한의 역사 만들기-북한 역사학 50년'(푸른역사 출판사)을 펴냈다.

1990년대 들어 북한 역사학에서 단군이 신화가 아닌 사실로 둔갑하는 배경을 비롯해 남북한 역사학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공동저자들에게 들어봤다.

17일 늦은 오후, 도면회(대전대).권오영(한신대) 교수를 비롯해 김광운(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김순자(연세대).연갑수(서울시청 문화재과) 박사, 그리고 박현순(서울대) 강사 등 6명의 공동저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박광용(가톨릭대) 교수는 늦게 합류했다.

- 저자들은 대개 70년대 후반 이후 대학에 들어갔고, 북한에 대해선 어느 세대보다 포용적 자세를 가진 세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의 역사 만들기'라는 책 제목에서 다소 냉소적인 느낌을 받았다.

도면회=공동 저자들의 글을 받아 본 출판사 측에서 제시한 제목인데 저자들도 모두 동의했다. 요즘 '만들어진 고대'등의 용어가 유행하고 있듯이, 역사를 특정 이념으로 재단해서 보는 분위기는 많이 사라졌다.

과거의 사실이 오늘의 요구에 따라 취사선택되며 역사화되는 과정에 대해 '역사 만들기'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물론 남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 90년대 들어 북한에서 단군이 역사적 실재 인물로 둔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권오영=1993년 북한이 단군릉을 발견했다고 한 이후 고대사 서술의 급격한 변화는 역사를 보는 관점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단군이 신화에서 역사로 자리바꿈하며, 30년 동안 견지해 오던 고조선과 단군신화에 대한 북한 학계의 정설이 순식간에 폐기된 것이다.

이에 대해 90년 전후 북한이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체제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들 설명해 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북한에 있는 단군릉의 경우 그것은 고대사가 아니라 북한 현대사의 주제라는 점이다.

- 남한과 북한의 역사 인식은 어느 정도 같고 다른가.

김광운=크게 보아 남북한 역사 서술의 85%가 같다고 볼 수 있다. 15%가 다르고, 다른 부분도 많은 경우 해방 이후 현대사 관련이다. 문제는 85%의 같음이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15%의 다른 점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 공통점이란 무엇인가.

도면회=남북 역사학은 모두 단일민족의 역사관 위에서, 유물사관이든 근대화론이든 중세에서 근대로의 일직선적 발전론에 입각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 후기 이후 자본주의가 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개화운동-의병투쟁-계몽운동-3.1운동 등 부르주아민족운동의 진보적 성격을 중시하고, 나아가 일제 지배의 민족말살적 성격과 그에 저항한 항일운동에 주목하는 등이 공통적 역사서술 방식이다.

- 그렇다면 무엇이 다른가.

김광운=대표적으로 민족해방운동을 예로 들면 남한이 임시정부 계열을 중시하는 반면 북한이 만주에서 김일성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다.

연갑수=흥미로운 것은 남북한이 각각의 역사학 연구 성과를 일부분씩 수용하며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70년대 초반까지는 남한의 역사학이 북한의 성과를 해외 경로 등을 통해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면 80년대 중반 이후엔 오히려 북한쪽에서 남한의 성과를 수용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예컨대 북한에서 부정적으로 평가되었던 조선왕조 정치제도 연구가 90년대 이후 활발해 졌는데, 이는 남한의 정치사 연구가 영향을 끼쳤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리=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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