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판 로빈슨 크루소 생존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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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호 30면

아무도 없는 곳에 나홀로 버려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크리스마스의 텅 빈 집이나 배가 끊긴 무인도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지구에서 족히 8000만km는 떨어진 화성이라면. 거기다 동료들이 모두 철수한 것도 모자라 기절했다 눈을 떠보니 배에 꽂힌 파편은 나를 압박하고 산소 부족 경보가 울리고 있다면. “X됐다”란 말이 튀어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마션’은 지구 최초의 화성 유인 탐사선 ‘아레스 3호’로부터 낙오된 우주비행사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이야기다. 여섯 명의 대원이 화성에 착륙한 지 며칠 만에 불어닥친 거대한 모래폭풍 때문에 긴급 철수를 결정했고 와트니는 통신장비의 파편에 맞아 나가 떨어지면서 통신이 두절됐다. 대장 루이스(제시카 차스테인)를 비롯한 대원들이 그가 죽었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영화는 와트니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고 마음 먹으며 시작된다. 광활한 우주와 별들이 반짝이는 풍경을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요르단 사막 어드메서 찍은 화성의 모습은 제법 그럴싸하지만 우주복을 입지 않고선 한 발짝도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이 남자의 활동 반경은 대부분 기지와 에어로크 안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우주 비행사로 선발된 이 남자의 과학적 지식이 제법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힘겹게 몸 속의 파편을 제거한 뒤 스테이플러로 상처를 봉합한 그는 생존을 위한 수학 문제 풀이에 나선다. 다음 화성 탐사선은 언제 올 것인가. 4년? 남아있는 보급품은? 예정 탐사 기간이 31일에 비상 예비 식량이 있고 이 5인분을 나 혼자 먹으면 대략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300일?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식물학자라는 장점을 십분 활용해 기지 안에서 감자를 재배하기 시작한다. 화성의 흙에 지구의 흙과 인분을 섞어 박테리아를 배양하고 화학 실험을 통해 무려 물을 만들어가며 말이다.


게다가 그는 매우 낙천적이며 임기응변에 강하다. 언제 누가 볼지도 모르지만 우주복과 숙소 도처에 설치된 카메라에 영상 일기를 남긴다. 1화성일 째엔 낙담했을지언정 60화성일 즈음엔 감자를 수확한다. 그렇다면 다음은 무엇을 해야할까. NASA와 교신할 수 있는 희망 한 가닥이라도 부여잡으려면 패스파인더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배터리가 떨어지면 태양광 충전을 동원하고 혹독한 추위와 맞닥뜨리면 방사능을 내뿜는 플루토늄을 가져다 난방을 시도한다. 생존이라는 거대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난제들이 도처에 산재해있지만 급한 불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꺼 나간다. “어디서든 식물을 재배하면 그 곳을 점령한 것”이니 “나는 화성을 점령한 우주 해적”이라고 굳게 믿으며 말이다.


영화를 이루는 한 축이 와트니의 원맨쇼라면 다른 한 축은 그를 구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 전 세계의 석학들이다. NASA는 물론 중국 우주항천국도 힘을 보태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마법을 부린다. 동시에 철학적 질문도 쏟아진다. 윤리적으로 옳은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한 사람의 생명이 여러 사람의 위험을 무릅쓸 만큼 소중한 것인가 등등. 하나의 목표를 두고 이렇게까지 연대한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에 제법 뭉클해지기도 한다.


때로 허무맹랑하고 경천동지할 방법도 동원되지만, 영화는 과학적 사실과 극적 재미를 적절하게 아우른다. 실제 화성에 남겨두고 온 자원을 재활용하거나 최근 액체 상태의 물이 발견됐다는 발표도 있었으니 영 근본없는 전개는 아니라는 얘기다. 자칭 ‘우주 덕후’인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인 앤디 위어가 원작 소설을 썼고 NASA가 기꺼이 검증과 자문을 맡았다니 한층 믿을만 하다. 거기다 ‘에이리언’ ‘프로메테우스’ 시리즈 등을 연출한 SF거장인 리들리 스콧 감독과 전작 ‘인터스텔라’를 통해 우주에 다녀온 맷 데이먼의 만남이이니 과학적 근거는 없어도 괜히 신뢰가 간다.


다만 소설을 먼저 읽은 관객이라면 아쉬울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그럴 것이다. 와트니가 감자 한 알을 수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삽질’을 했는지, 나침반도 작동않는 곳에서 로버를 타고 얼마나 찌질하고 힘겹게 버텼는지 그 길고 지난한 여정을 다 담아내기에 142분은 너무 짧았다. 그 많은 수학 공식과 과학 지식이 모두 튀어나와 스크린을 뒤덮었다면 그 역시 뻑뻑했을 테지만 말이다. 아직 책을 안 읽었다면 반드시 영화부터 보기를 소심하게 권한다. 8일 개봉.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사진 이십일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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