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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 국내 외국 기업은 동반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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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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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구
은행연합회장

분단된 남북의 끊임없는 이념 대립 탓인지 한국처럼 이분법적 사고와 흑백논리에 갇혀있는 사회도 없는 것 같다. 이는 금융에도 예외없이 영향을 줘 잘못된 사회적 통념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국내 시중은행에 대한 외국인 지분이 66%나 되지만 국내은행이 배당을 하면 괜찮고 외국계 은행이 배당을 하면 외화유출이라 매도한다.

이분법 사고, 흑백논리 갇혀
먹튀·투기자본으로만 인식
수출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
세계 휘젓는 기업 인정해야
투자도, 일자리도 늘어날 것

외국계 사모펀드에 대한 시각도 이제는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각각 ‘먹튀’와 ‘악덕 기업 사냥꾼’이라는 별칭이 붙어있는 론스타와 엘리엇의 최근 행동을 옹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다만 이들을 보도하는 국내 언론과 외국 언론의 시각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은 지적돼야한다. 같은 맥락에서 론스타와 엘리엇 사태를 바라보는 해외투자자의 시각 역시 국내의 대중적 시각과는 전혀 다르다.

사모펀드하면 먹튀, 헤지펀드하면 투기자본, 외국회사가 배당하면 외화유출로 연결되는 획일적 등식의 밑바탕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와 그 속에서 싹 튼 피해의식이 일정 부분 자리 잡고 있다. 남북문제, 한일관계처럼 외국자본과 외국기업에 대해서는 부정적 생각을 떠올리는 ‘핫버튼’이 국민 정서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만큼 수출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그 혜택을 누리는 나라도 없다. 그런데도 국내 진출한 외국자본이나 외국기업과 관련된 사안만 떠오르면 균형감각을 잃고 한 방향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접근은 국민이 다양한 실제의 현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을 방해하고 젊은이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필자가 대학에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글로벌 시대에 맞게 보다 객관적이고 균형 있는 시각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한다. 앞에서 언급한 사모펀드, 헤지펀드 그리고 은행의 배당 등에 대한 해외의 언론이나 금융계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통념이 얼마나 다른지도 설명한다. 그리고 외국자본이나 외국회사에 대한 일방적인 시각 교정을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인 삼성전자나 현대차의 미국법인이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짓고 매출이 성장한다는 소식을 접하면 기분이 좋지요?” 대부분의 학생이 “네”라고 답한다. 이어서 “그럼 한국에 진출한 한국씨티은행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여기서 돈 많이 벌었다 하면 기분이 좋은가요?”라고 물으면 “기분이 별로예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따져보면 미국에 진출한 현대자동차가 미국에서 고용하는 사람은 미국 사람이고 세금은 미국 과세당국에 내고 미국에서 생산하고 판매하는 자동차의 부가가치는 미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에 기여한다. 반대로 한국에 진출한 마이크로소프트나 씨티은행이 채용하는 직원은 바로 여러분이고 세금도 국세청에 내고 한국의 GDP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과거 현대자동차 앨라바마 공장에 방문 했을 때 회사 입구엔 3개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 그것은 성조기, 앨라바마 주기(州旗) 그리고 사기(社旗)였다. 그곳엔 태극기는 없었다. 반대로 한국에 진출한 한국씨티은행 앞에도 태극기는 있지만 성조기는 없다. 이는 글로벌 기업으로써 진출국에 대한 예의이자 현지화를 위한 당연한 행동이다. 여기까지 말하면 학생들은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한다.

 우리는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대표적 금융회사인 HSBC와 SC그룹이 규제가 까다로운 런던에서 벗어나 싱가포르나 홍콩으로 국적을 옮기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는 어느 기업이 자국기업이고, 외국기업인지 그 국적을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 되었다. 기업의 국적 또한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 삼성전자나 씨티은행이 모두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를 무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이라는 인식으로 이들이 한국에 보다 많은 투자를 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할 때다. 젊은이는 이분법의 시각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야를 갖고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 주고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기업에 박수를 보내주길 기대해 본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