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양건에게 쓴 김만복 편지가 남북 정상회담 물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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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한반도 평화구상, 10·4 남북정상선언』에 따르면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계기는 2007년 5월이었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당시 서울에서 열린 20차 남북 장관급회담 때 남측 회담 대표들을 격려한다는 명분으로 회담장을 찾았다. 하지만 정작 김 전 원장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김양건 “비공개 방북해달라” 답신
합의문 초안에 남북 간 FTA 추진
헌법과 충돌 등 논란 우려해 철회

 회고록은 “김만복 국정원장은 새로 임명된 북측의 김양건(사진) 통일전선부장에게 ‘남북관계 진전과 현안사항 협의를 위한 비공개 접촉을 제안’하는 장문의 편지를 남북 장관급회담에 참석 중인 북측 지원요원(보장성원)을 통해 전달했다”며 “북측은 그해 7월 29일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명의로 ‘8월 2일부터 3일까지 국정원장이 평양을 비공개로 방북해 줄 것을 공식 요청한다’는 답장을 보내왔다”고 공개했다. 김 전 원장이 쓴 장문의 편지는 이번에 공개되진 않았다. 회고록에는 김 전 원장이 세 차례 비밀리에 평양을 찾아 일정과 의제 조율을 한 사실도 담겼다. 책을 쓴 김 전 원장 등은 당시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배경으로 9·19와 2·13 합의 등 북한 핵 문제가 진전되는 분위기가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김 전 원장은 2006년 11월 청와대에서 (국정원장)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부터 노 전 대통령에게 남북 정상회담을 ‘강력히’ 건의했다고 한다. 김 전 원장은 책에서 “2006년 11월 23일 나(김만복)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국정원장 임명장을 수여받은 후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을 건의했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북핵 문제 진전 없는 남북 정상회담은 의미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으나 고집스럽게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재차 건의해 노 대통령이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회고록은 제2차 남북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노 대통령이 남북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김 전 원장 등은 책에서 “10·4 남북 정상선언의 최초 안에는 남북 간 FTA를 체결하는 내용이 포함됐었다”며 “하지만 우리 측 관계기관의 의견수렴 과정에서 삭제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남북 경협은 민족 내부거래인 동시에 국제무역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는데, 무관세를 적용함으로써 국제분쟁의 소지가 있었다”며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상 (다른 나라를 차별하지 않는) 최혜국 대우 원칙 위반으로 피소될 가능성이 있어 FTA를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 추가 검토를 한 결과 남북한을 별개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헌법 규정과의 충돌 등 논란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 때문에 제외됐다고 한다.

정용수·안효성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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