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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점 따려면 150시간 학습 … 학생 학업향상 책임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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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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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8세로 현직 대학 총장 가운데 최고령인 김희수 건양대 총장은 “많이 걷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게 건강유지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건양대는 본지가 창간 50주년을 맞아 시행한 대학교육 질 평가에서 조사대상 37개 대학 중 ‘상(상위 10~25%)’으로 평가됐다. 이 대학에선 매 학기 시작 전 교수들이 모여 강의 계획을 함께 점검하고 학생들의 수업 몰입도를 높일 수 있도록 교습법을 배우며, 학생 열 명 중 아홉(90.5%)은 지난 학기에 교수와 수업 내용·과제를 상담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대학이 한 학기 수백만원을 내고 다니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대학이 주목을 받는 게 한국 대학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 대학 김희수(88) 총장을 만나 충남 논산에 있는 이 대학이 교육의 질 평가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비결을 물었다. 그는 이 대학의 설립자이며, 현직 총장 중 최고령자다.

[대학의 길, 총장이 답하다] 건양대 김희수 총장

수십년 같은 강의 반복, 여기선 절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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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들이 모여 강의계획서를 놓고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하는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과학자에게 20년 전 연구실을 주고 연구하라고 하면 과학자는 아마 쓸 수 있는 실험실 도구를 찾기 어렵지 않을까. 하지만 한국 대학 교수에게 20년 전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라고 해도 큰 어려움이 없다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대학 교육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우리 대학에선 교수들이 똑같은 강의계획서, 강의 내용으로 절대 강의하지 못하게 했다. 이게 교육의 질을 관리하는 핵심이다.”

 - 교수들이 바뀌어야 하는 게 핵심인가.

 “이번 수시모집에서 평균 경쟁률이 8대1이 넘었다. 학생들은 입학하기까지 이런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했다. 이렇게 어렵게 들어온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시켜야 학생과 부모에게도 떳떳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선 교수의 마인드가 달라져야 한다. 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지식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것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고민해야 한다.”

 - 어느 정도로 철저히 가르치고 있나.

 “1년 365일 중 방학(140일)과 주말, 법정공휴일을 빼면 고작 146일 남는다. 절대적으로 학습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결국 방학과 주말을 이용해 연 200일 이상의 수업 시간을 확보했다. 지난 여름방학 때만 해도 재학생을 대상으로 104개 교육프로그램이 운영됐다. 참여인원만 4000명이 넘었다. 누적학습 시간은 수십만 시간이 됐다.”

학사경고 받으면 교수가 직접 학습 조언

 - 학생들이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도 중요할 텐데.

 “창의융합대학(2012년 설립, 융합IT·의약바이오·글로벌프런티어 스쿨·융합디자인 학부로 구성)의 경우 예를 들어 화요일에 수업이 있으면 학생들은 월요일에 모여 사전 학습을 한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저녁에 모여 수업 내용을 점검하고 심화학습을 한다. 강의 1학점을 이수하기 위해 학생이 투입하는 시간은 사전학습 50시간, 실제 수업 50시간, 심화학습 50시간 등 총 150시간이다. 학생 뿐 아니다. 교수 역시 학생들이 질문을 그칠 때까지 함께 한다.”

 - 못 따라오는 학생들은 어떻게 하나.

 “학습부진학생들을 위한 교육력강화프로그램이 따로 있다. 학사 경고를 받으면 다음 학기 수강신청이 안 된다. 지도교수가 붙어 학습동기를 부여하고, 학습법도 조언한다.”

 - 학생과 교수의 역할이 달라져야 할 것 같다.

 “학생은 사전학습부터 심화학습까지 스스로 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체험하며, 습득한다고 해서 그것을 CLD(Creative Learning by Doing)라고 부른다. 교수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학생의 학습 과정을 전반적으로 관리해주는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해야 한다.”

 -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라고 봐야 하나.

 “1962년 영등포에서 개원(김안과)했을 때부터 24시간 연중무휴 진료를 내세우며 수요자 중심의 병원을 운영했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설립 때부터 ‘가르쳤으면 책임진다’는 게 우리 대학의 모토(신조)였다. 이번 중앙일보 평가에서 학생식당의 질이 높지 않다는 재학생들의 평가가 나오자 당장 식당 음식부터 바꾸라고 했다.”

작년 취업률 74.5% … 전국 대학 1위

- 취업률에 신경을 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인가.

 “교수들에게 ‘여러분의 아들 딸이 대학을 나왔는데 취업을 못하고 백수건달이 되었다면 기분이 좋겠습니까’라고 자주 묻는다. 대학이 지성의 전당인데 취업률이나 신경을 쓴다고 핀잔을 주고 비난하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묻고 싶다. 교육에는 반드시 성과가 뒤따라야 한다. 적지 않은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왔으면 대학은 학생의 취업에까지 최선을 다해줘야 한다. 지난해 전국 대학 취업률 1위(74.5%)를 했을 뿐 아니라 최근 5년 간 톱 5위를 놓친 적이 없다.”

2학년부터 취업 특강 … 진로찾기 도움 줘

 - 취업률을 높이는 비결이 있다면.

 “지난 8월 마지막 주, 학기가 시작되기 전 일주일을 ‘취·창업 동기유발학기’로 지정했다. 2학년 재학생 300명을 대상으로 취업과 창업에 필요한 각종 프로그램과 특강을 제공했고, 기업과의 인턴십 협약도 체결했다. 2학년 때 자신의 진로를 명확히 설정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동기와 힘을 주자는 게 동기유발학기의 취지였다.”

 - 왜 2학년인가.

 “3·4학년만 돼도 너무 늦다. 2학년이 적기다. 이 때 취업이나 창업 동기를 주는 게 중요하다.”

 - 학생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실에서 지방 사립대는 더욱 어려움을 느낄 텐데.

 “지방대학이 수도권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다 잘되나. 그렇지 않다. 한국의 대학교육은 이제 엘리트 교육도 아니고 보편화 교육이다. 어차피 대학 역시 학생 등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대학 만이 살아남는다. 나는 학생들이 오고 싶은 대학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학교 내 어느 곳을 가든지 개인별로 팀별로 원하는대로 공부할 수 있는 학습공간을 갖추고 있다. 공부를 꼭 교실, 도서관에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만난 사람=강홍준 사회1부장 kanghj@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김희수 총장=충남 논산 출생. 2001년에 총장이 됐고 이후 네 차례 연임됐다. 김 총장은 “내 얼굴을 모르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으며, 총장과 마주쳐 인사를 하지 않는 학생은 건양대생이 아니다”고 말할 정도다. 공주고, 연세대 의대를 졸업했다. 62년 서울 영등포에서 안과 전문 김안과를 개업해 재산을 모은 뒤 91년 고향에 대학을 설립했으며 94년 의과대까지 유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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