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청와대와 새누리당, 공천룰 놓고 다툴 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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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둘러싼 공천 갈등이 친박근혜계와 비박근혜계 간 계파 대결로 흐르고 있다. 이 제도는 유권자에게 안심번호를 부여한 뒤 선관위가 전화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를 결정짓는 신종 공천방식이다. 새누리당 김무성·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의견일치를 본 이 방식에 대해 청와대가 정면으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어제 낮,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총회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는 민심왜곡, 조직선거, 세금공천 등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도 “청와대와 상의할 일이 아니다”고 맞서면서 파열음은 커지고 있다.

 다음 총선에 나갈 후보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를 놓고 당·청이 이렇게 낯뜨거운 공방을 벌이는 나라가 또 있을까. 우선 대통령 참모가 ‘공천룰에 문제가 있다’며 집권당 대표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비상식적이다. 안심번호 국민공천 방식에 문제가 많은 건 사실이다. 안심번호의 익명성 보장 여부, 상대당 지지자들에 의한 역선택 문제, 전화조사에 따른 비용을 국민세금으로 떠안는 부분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무엇보다 100%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하는 건 대의정치와 정당정치의 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그렇더라도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이래선 안 된다. ‘대통령이 없는 틈을 타 사고를 쳤다’는 식으로 상대를 몰아세우는 건 구태이며 퇴행적이다.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해 당과 국회에서 차분하고 충분한 토론을 통해 대안을 만들어나가도록 하면 될 일이다. 또 영향력 있는 당원인 박 대통령이 공천과 같은 중대한 사안에 얼마든지 의견을 낼 수 있고 그 의사는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그 방식과 절차 또한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럴 때 당·청 간 소통 역할을 하라고 두 명의 국회의원을 정무특보로 두고 있지 않은가. 사전 당내 조율 없이 덜컥 야당과 합의부터 서두른 김 대표도 자신의 처신을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공천갈등을 푸는 방법은 양쪽 모두 ‘공천권을 국민에게’란 기본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