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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위험한 물건 이용한 폭행, 가중처벌하는 폭처법 위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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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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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특별법 시스템이 ‘위헌 도미노’에 흔들리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형법 등에 규정된 범죄 중 일부에 대해 법정형만을 높여 놓은 형사특별법 조항들에 대해 잇따라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다.

형법보다 형량 높은 ‘폭처법’ 적용
검사 의중에 따라 달라져 논란 제기
형법 62년 전 입법, 시대상 못 반영
전문가들 “법 전면 개정이 바람직?

 헌재는 24일 ‘위험한 물건’을 이용해 협박·폭행·재물손괴죄를 범한 사람을 가중처벌토록 하는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폭처법) 제3조 1항에 대해 위헌 결정했다. 헌재는 “형사특별법이 갖춰야 할 형벌체계상의 정당성과 균형을 잃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의 기본 원리에 위반되고 평등원칙에도 위반된다”고 말했다.

 폭처법 3조 1항은 같은 행위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제261조 특수폭행, 제284조 특수협박, 제369조 특수손괴)이 이미 있는 데도 가중처벌만을 위해 만든 형사특별법이다. 위험한 물건을 이용해 상대방을 때린 경우(특수폭행) 형법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리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폭처법 위반으로 기소되면 법정형이 ‘1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다.

 같은 행위에 형법을 적용할지, 아니면 폭처법을 적용할지는 검사의 마음에 달린 것이었다. 검찰이 폭처법상 특수폭행죄를 적용해 기소한 사람은 2006년 231명에서 지난해 1570명으로 급증했다.

그 결과 형법의 ‘특수폭행죄’ 등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헌재는 “어떤 법 조항을 적용해 기소하느냐에 따라 선고되는 형량의 하한이 최대 6배나 차이 나는 등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한다”며 “법 적용 여부를 검사의 재량에만 맡김으로써 피의자나 피고인의 자백을 유도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최근 형량을 가중하는 형사특별법 조항들에 대해 위헌 결정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상습적으로 물건을 훔친 경우 3년 이상의 중형에 처하도록 해 ‘장발장법’이라고 불려온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 5조의4에 대해 위헌 결정했다. 형법상 상습절도죄가 적용되면 벌금형도 가능하지만 특가법은 법정형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이어서 감경을 받아도 1년6월 이상의 유기징역이라는 중형을 피할 수 없었다. 지난해 4월에는 마약류 수입사범을 무조건 가중처벌하는 특가법 제11조 제1항이, 같은 해 11월에는 통화 위·변조 사범을 가중처벌하는 특가법 제10조가 위헌 결정을 받았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정환(형법·형사정책) 교수는 “형벌 가중 사유 없이 형량만 높여 놓은 형사특별법들을 모두 폐지하고 형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는 게 학계의 일반적 의견”이라며 “법무부와 국회가 입법과 개정이 용이한 형사특별법에 지나치게 의존해 빚어진 문제”라고 말했다. 이미 위헌 결정이 내려진 조항 외에도 ‘문제 법률’로 지적되고 있는 형사특별법 조항들이 많다. 강도죄 등을 가중처벌하는 특가법 5조의4 3항은 폭처법 3조 1항과 같은 이유에서, 강도상해 등의 재범자를 가중처벌하는 같은 법 5조의5는 살인죄보다 법정형이 무겁다는 이유로 위헌 논란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형법 전면 개정 논의는 여전히 법무부에서 잠자고 있다. 1953년 제정된 현행 형법은 그동안 부분적으로 손봐 왔을 뿐 시대 변화를 반영하는 전면 개정이 이뤄진 적이 없다. 법무부는 2007년 개정 논의에 착수했으나 아직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처법)=원래 일본 법이다. 해방 후 사라졌다가 1961년 5·16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를 통해 부활했다. 불안정한 정국에 발생하기 쉬운 집회·시위를 포함해 야간 폭력행위나 집단 폭력행위를 단속하는 게 목적이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특정강력범죄의처벌에관한특례법’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과 함께 5대 형사특별법으로 불린다. 최근에는 주폭(酒暴) 단속, 보복운전 단속 등에 널리 활용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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