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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걸음걸이 어색하지 않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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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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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어머니를 도와 농촌 체험을 하고 있는 신규철 원장(가운데).]

내게 올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폭염 속에서 방방곡곡 허리와 무릎이 아픈 어머니들을 찾아 나섰다. 모 방송사에서 진행한 '엄마의 봄날' 이야기다.

[특별 기고] 제일정형외과 신규철 원장의 농촌마을 체험기

'엄마가 행복해야 대한민국이 행복하다!' 방송 참여를 제안한 프로그램의 첫 줄이 나를 사로잡았다. 가족을 위해 몸이 부서지도록 희생했지만 치료할 형편이 어려운 어머니의 아픔을 덜어드리자는 취지였다. 연로한 부모를 모시는 아들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나는 전국 시골을 다니며 이 땅의 어머니를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체험했다. 당신들의 생활은 정말이지 고달프고 힘들었다.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나물을 캐고, 농사 짓고, 엿을 만들고, 생선을 손질하고…. 어설프게 따라 하자니 허리, 무릎, 어깨 어느 부위도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힘들어 하시며 진료실을 찾던 어르신의 고충이 내게 그대로 전달됐다.

이런 생활을 수십 년간 해온 어머니들의 상태는 한눈에 봐도 심각했다. 오랜 시간 쪼그려 앉아 일을 한 탓에 허리는 굽고, 무릎은 닳았다. 주변을 짚고 일어나는 습관으로 어깨까지 손상돼 있었다. 그야말로 척추·관절질환의 종합세트였다.

그럼에도 어머니들은 직접 거둔 무공해 식품을 손맛에 따뜻한 정까지 얹어 우리를 푸짐하게 대접해 주셨다. "시골 구석까지 찾아와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니 고맙다”는 말씀도 계속 하신다. 이런 체험은 내게 신선한 자극이 됐다.

순박한 웃음과 따뜻한 두 손을 마주 잡고 있노라면 방송은 까맣게 잊혀졌다. 그저 시골의 우리 어머니들이 남은 삶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건강하게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어머니들을 병원에 모셔 정밀검사를 했다. 신경통로가 좁아진 척추관협착증, 무릎 연골이 닳은 퇴행성관절염, 어깨 힘줄이 끊어진 회전근개파열도 많았다.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자도 흔했다.

내과질환과 고령인 점을 고려해 적합한 치료법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수술하지 않고 호전될 수 있는 상태인 경우엔 비수술 치료를 시행했다. 어머니들은 병변 부위와 증상에 따라 신경성형술, 풍선신경확장술, 척추성형술, 브리즈망 등의 비수술 치료와 미세현미경 감압술, 척추유합술, 인공관절치환술, 관절내시경 등의 수술을 받았다.

어머니들은 피부를 절개하는 큰 수술로 생각했던 수술이 부분마취로 흉터 없이 간단하게 끝나자 신기해하셨다. 비수술 치료는 시술 당일 혹은 이튿날부터 효과가 뚜렷해 어머니는 물론 가족까지 놀라게 했다.

한 걸음도 떼기 힘들었던 퇴행성관절염 어머니들은 인공관절 수술을 받고 뒷짐을 진 채 걷는 여유로움을 보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당신들에게 봄날이 찾아온 것이다.

아직도 우리 주변엔 가족을 위해 평생 일만 하시며 헌신하는 어머니가 너무 많다. 혹여 자식에게 부담이 될까 걱정돼 아픈 내색 한 번 못 하신다. 다가오는 추석, 고향을 찾았을 때 어머니의 걸음걸이나 걷는 속도가 달라지지 않았는지, 무언가 자꾸 짚고 일어나시지는 않는지 살펴보면 어떨까. 작은 관심으로 어머니의 봄날을 찾아드릴 수 있다. '어머니의 봄날'이 대한민국의 행복으로 이어지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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