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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잔한 보랏빛 선율에 라트비아의 아픔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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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호 27면

라트비아 태생의 첼리스트 겸 작곡가 칼 다비도프.

19세기 러시아 첼로 명인으로 알려진 칼 다비도프(Karl Yuliyevich Davydov, 1838~ 1889)는 라트비아 태생이지만 러시아에서 수학하고 주로 활동해서 러시아 첼리스트 겸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와 가까웠던 차이콥스키는 그에게 ‘첼로 제왕’이란 호칭을 선사했다. 물론 첼로 연주자로 당대 누구보다 뛰어난 점을 평가했겠지만 그가 길지 않은 생애에서 오직 첼로 연주와 네 곡의 첼로협주곡을 비롯한 다수 소품을 작곡하는 등 첼로라는 악기에만 몰두한 걸 보면 이 호칭이 그에게 어울린다.


1995년도 가을, 상트 페테르부르크 중심대로인 네브스키 거리를 산책하다가 우연히 조그만 악기점에 들러 현악기들을 둘러보는데 진열대에 놓인 악보 제목이 눈에 띄었다. 다비도프의 첼로 소품 ‘무언의 로망스’였다. 다비도프란 이름을 그때 처음 알았다. 제목에 끌려 무작정 그것을 구입했다. 당장 필요한 건 아니지만 집에 첼로를 배우는 아이가 있었다. 악보를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몇 해 뒤 겨우 그것을 들을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 한동안 첼로를 배우던 아이 뒷바라지를 하다가 혼자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아이에게 연주를 시켜놓고 들었는데 조촐한 소품이지만 서정성이 짙은 선율이 기대 이상이었다. 첫 만남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지금도 다비도프 하면 그의 어떤 곡보다 먼저 이 짧은 곡이 먼저 떠오른다.


‘무언의 로망스’는 러시아식 정취보다 낭만시대 서구 취향에 가까운 서정이 무르녹은 작품으로 다비도프의 모든 작품에 통하는 특징을 집약해 보여주는 아름다운 곡이다. 보랏빛의 약간 애달픈 가락이 마음에 젖어오는데 이런 것을 서구와 러시아 틈바구니에 끼어 오래 시달림을 받아온 라트비아식 서정이라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라트비아는 인구가 고작 2백여만의 소국이지만 기돈 크레머, 미샤 마이스키,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 등 음악계의 별들을 다수 배출한 음악 강국이기도 하다.


다비도프는 약관 21세에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첼로 수석을 지냈고 귀국한 뒤 25세엔 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원장직을 지낸, 요즘 말로 하면 영재의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의 대표적 협주곡인 첼로협주곡 2번도 25세에 작곡한 것이다. 최근 다비도프가 한때 문하생을 좋아하다가 스캔들이 되는 바람에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러시아를 떠나 있다가 몇 해 만에 귀국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생을 마쳤다는, 애석한 기사를 봤는데 문득 ‘무언의 로망스’가 떠올랐다. “아! 그 곡의 애절함이 그런 아픈 체험의 기록인가?”


작곡 연대를 따져봐야겠지만 곡에서 받은 단순한 상상일 뿐, 정확한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런 로맨틱한 곡을 쓰는 인물이라면 그런 비련을 이미 마음 속에 잉태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곡 연주로는 남매로 추정되는 첼로의 에프그라포브(Lev Evgrafov)와 피아노의 에프그라포바(Levdia Evgrafova)의 정성이 깃든 진중한 연주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다닐 샤프란의 첼로 연주집.

다비도프에게 네 곡의 첼로협주곡이 있다는 것도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겨우 알게 되었다. 다닐 샤프란의 전집 성격을 띤 음반집(Daniel Shafran Edition)이 2000년 초반쯤 나와 리뷰를 쓰느라고 CD 7매를 모두 들어야 했다. 다닐 샤프란만큼 한국에서 단기간에 지지자를 많이 끌어 모으고 다수 음반이 경쟁적으로 발매된 사례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 전집판은 그런 현상의 종착점 쯤에 해당된다.


그런데 바흐에서 파야(Manuel de Falla)까지 가짓수가 넘칠만큼 많지만 대부분 이미 귀에 익거나 한 두 번쯤 들었던 곡들이라 신명이 나지 않았다. 더위 속에 무료함을 달래줄, 샤프란의 날렵하고 감칠맛 나는 연주가 빛을 발하는, 어느 구석에 감춰진, 내가 처음 듣는 그런 곡은 없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마침 그런 곡이 나타났다. 첼로협주곡 2번이었다. 민요풍의 지방색이 짙은 서정적 선율에는 샤프란의 찰기 있는 연주가 제격이다. 내 귀는 벌써 1악장 서주에 등장하는 아름답고 애달픈 보랏빛 선율에 끌려가고 있었다.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지만 명곡 반열에 들지 못하면 음반으로 선택될 기회가 거의 없다. 다비도프 협주곡을 그간 구경도 못한 것은 그런 이유 말고는 없다. 그러나 이 초면의 첼로협주곡은 비록 강렬한 주제로 압도하는 힘은 약하지만 첼로라는 악기의 표현 수법을 다채롭게 펼쳐보이고 서정성 짙은 주제 선율의 호소력이 심금을 울리고도 남았다. 짜임새도 전혀 무리가 없다. 낮게 깔리는 2악장 아다지오 선율은 첼로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세련미 넘치는 저음을 들려준다.


네 곡의 협주곡 중 지금 연주되는 것은 앞의 두 곡인데 협주곡 1번은 협주곡이란 틀에 맞춰 매우 짜임새 있고 기교적으로 뛰어난 점이 돋보인다. 샤프란의 연주는 늘 그렇듯 깊은 열정으로 매우 은밀하고 장중하게 곡을 이끌어간다. 그는 러시아 첼로음악 기틀을 세워놓은 선구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1949년 녹음은 지금 감상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차라리 근래 다비도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마리아 타라소바나 스위스 국적의 중국계 첼리스트 웬신양의 힘이 넘치는 최근 연주를 듣는 편이 좋을 것이다.


다비도프 스트라디바리라는 악기가 있다. 당시 어느 예술후원자가 첼로의 1인자인 다비도프에게 선물한 1712년제 스트라디바리이다. 이 악기는 자크린 뒤프레가 사용하다가 그의 사후 요요마가 물려받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송영 작가sy4003@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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