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업·대학 4만여 곳서 진로 체험 … 학생들의 꿈·끼 찾아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5면

인천 성리중 학생들이 지난 4일 경기도 수원 영통에 있는 삼성 이노베이션 뮤지엄을 둘러보며 전자기술 역사에 대한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서보형 객원기자

“평소 소비자와 제품에 대해 흥미가 많았는데 스마트폰 생산과정을 보고 마케팅에 관심이 커졌어요.”(전희우군) “상상만했던 세계적 명차를 보고 나니 자동차·비행기 공학자로 꿈을 정할 수 있었어요.”(조우진군)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의 미래 모습을 가슴에 품었다. 몇몇 학생은 결심이 선 듯 진로활동 계획을 수첩에 써내려 갔다. 진로·직업 체험학습에 나선 인천 성리중 학생들의 모습이다.

지난 4일 아침 10시 경기도 수원 영통에 있는 삼성 이노베이션 뮤지엄(Samsung Innovation Museum) 앞. 인천에서 온 115명의 성리중 2학년 학생들이 인솔교사와 함께 몰려들었다.

이 곳은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역사와 미래를 이해할 수 있도록 삼성전자가 마련한 체험·전시 공간이다. 1층은 지금까지 생산된 삼성 전자제품을 전시한 역사관, 2층은 파노라마 영상 등 최신 전자기술을 체험하는 장, 3층은 디스플레이·모바일·반도체의 기술의 진화를 체험하는 관, 5층은 전기·조명·통신·가전·라디오 등 전자산업의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학생들은 1980년대 생산된 첫 노트북, 에디슨이 발명한 전구, 18세기 발명품 등을 보며 기술의 진화를 피부로 느꼈다. 3층 체험관에선 탄성이 쏟아졌다. 학생들이 테블릿PC에 쓴 글과 그림이 우주 행성 모형의 화면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전자공학에 관심이 많은 김준(인천 성리중 2) 군은 “지난번 기계설계 분야를 찾아가 전기자동차 제작과정을 체험했다”며 “이번엔 전자기술의 진화를 보며 실생활에 어떻게 활용되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김군은 “다음 학기엔 두 분야를 잇는 연결고리를 탐구해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지난 6월 교육부와 손잡고 자유학기제 지원에 동참하고 있다. 컴퓨터 소프트웨어 교육, 삼성전자 임직원이 진로 설계를 도와주는 꿈 멘토링, 창의력을 키워주는 제품 디자인 아카데미, 휴대전화기 개발과정을 통해 공학·경영 등 관련 직업을 이해하는 진로직업체험 교육 등 다양한 교육기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정금용 삼성전자 사회봉사단장은 “삼성그룹 10개 계열사가 참여해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 지난해 전국 중학교 700여 곳의 중학생 3800여명에게 진로·직업 체험 기회를 제공했다”며 “사내 분야별 전문가를 활용해 진로 멘토링을 확대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성리중 학생들은 이날 오후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삼성화재교통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이 곳에선 다양한 용도의 자동차 전시물을 보며 자동차 기술의 발전과 현대문명의 발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진로교육이 공부실력으로 이어져=진로·직업 교육을 강화한 정부의 자유학기제 도입에 발맞춰 성리중은 지난해부터 맞춤형 진로개발 교육과정을 개발, 운영에 들어갔다. 해피 플러스(Happy Plus) 행복교육실천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내용은 크게 교과연계형과 자율형으로 구성된다. 교과연계형은 교과와 교과를 연결한 융합형 수업으로 이뤄진다. 학생들은 토의·토론과 실험·실습으로 과제를 수행하며 문제해결능력과 창의력을 기르게 된다. 자율형은 학생 저마다 기르고 싶은 재능을 스스로 배우는 과정이다. 프로그램은 감성능력 증진, 스포츠 팀워크, 특기 발굴, 진로 탐색, 전문성 향상 등으로 구성돼 요일별로 운영된다.

진로탐색 프로그램도 3단계로 구성해 학생이 진로를 명확하게 찾도록 돕고 있다. 이를 위해 자기 이해에서부터 동기 부여, 도서관 등 주변 프로그램 활용법, 멘토링 등으로 세분화됐다.

그 결과 성리중 학생들의 태도에 큰 변화가 일었다. 예전엔 진로를 막연하게 생각하거나 직업 선택 정도로만 여겼지만 지금은 자신의 재능을 개발하고 적합한 진출 분야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수업에 대한 집중도와 참여도도 높아졌다. 특히 진로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스스로 찾아 배우고 실천하는 탐구활동이 확대됐다.

성리중이 지난 3월과 7월에 2학년 158명을 대상으로 진로 성숙도의 변화를 검사(스트롱(STRONG) 진로탐색II)한 결과 진로에 대한 계획이 15%에서 18%로, 직업에 대한 이해가 21%에서 24%로 각각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진로·직업에 대한 생각이 성숙해진 것이다.

진로 성숙을 방해하는 요인도 12.7%에서 7.6%로 줄었다. 이를 통해 자기 이해, 정보 탐색, 자기 결정과 관련된 능력이 향상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자신의 꿈과 끼를 찾아가는 개발 의욕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권점현 인천 성리중 교장은 “진로·직업을 교육하기 위해 국·영·수 수업을 줄이자 처음엔 성적 하락에 대한 학부모의 우려가 컸었다”며 “하지만 지난해 자유학기제를 경험한 지금 3학년의 학력평가 성적이 인천 동부교육청 중학교 중에서 2위에 올랐을 정도”라고 말했다. 권 교장은 “이는 자신의 꿈과 끼를 스스로 찾아가는 노력이 교과 공부에 동기를 부여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관 손잡고 청소년 진로직업교육 확대=교육부는 2013년 도입했던 중학교 자유학기제를 올해 2552곳으로 확대하고 2016년에는 모든 중학교로 전면 시행할 계획이다. 자유학기 활동은 총 170시간 이상 편성하고 오전에는 학생의 참여와 활동 위주로 구성한 교실 수업을 운영하고 오후엔 학생이 희망에 따라 다양한 활동을 벌이게 된다. 또한 현장직업체험, 직업실무체험 같은 다양한 진로 체험활동을 학교별로 2회 이상 실시된다. 이 같은 변화를 담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도 개정된다.

조선진 교육부 공교육진흥과 교육연구관은 “한국과학창의재단과 함께 대학·기업 같은 공공·민간부문에서 진로·직업을 경험할 수 있는 체험처를 4만7300여 곳으로, 교육프로그램을 9만4600여 개로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라며 “원격영상 진로멘토링, 진로체험 버스 방방공곡, 찾아가는 진로 체험단 등 농어촌 학생의 진로체험을 위한 프로그램도 확대해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필 평가를 없애고 자기주도학습과 협력학습을 촉진하는 과정 평가를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자유학기제=중간·기말고사를 보지 않는 대신 토론·실습 수업, 직장 체험활동 같은 진로·직업 교육을 받는 제도. 학생은 중학교 한 학기 동안 시험 부담 없이 자신의 꿈과 끼를 찾는 진로 탐색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정부 정책이다.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에서 착안했다.

박정식·이선화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