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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가난 탈출, 80년대 중동 진출 … 외환위기 이후엔 30대 이상 전문직 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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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인의 해외 이주는 고난의 역사였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의 『세계의 한인이주사』에 따르면 한인 해외 이주는 1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0년대 기근과 부패한 관리의 폭정을 피해 조선인들이 고향을 떠나 청(만주)과 러시아(연해주) 땅으로 건너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20세기 들어선 서구로 이주 범위가 확대됐다. 사탕수수 농장 취업을 위해 121명의 한국인이 1902년 12월 인천 월미도를 떠나 이듬해 1월 하와이에 도착했다. 현재 가장 오래된 한국인의 공식 이민기록이다. 1905년 멕시코로 이주한 1000여 명의 한국인은 에네켄(Henequen·용설란)을 따는 노동자로 일하러 간 탓에 이른바 ‘애니깽’이라 불렸다.

 일제 강점기에도 간도나 만주·연해주로 대규모 이주가 이뤄졌다. 연해주 정착 한인은 30년대 소련 정부에 의해 강제로 중앙아시아로 이주돼 ‘고려인’으로 사는 아픔도 겪었다. 20년대 일본이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서 경제 호황을 누리자 한인은 돈을 벌러 일본으로 떠났다. 32년 일본이 만주국을 건설하면서 한인을 대규모로 이주시키기도 했다. 37년 중일전쟁, 41년 태평양전쟁 이후엔 수많은 조선인이 광산과 전쟁터에 강제로 끌려갔다.

 45년 광복 후 한국 정부가 이민 정책을 수립한 62년 전까지는 해외 입양, 미국인과의 결혼, 유학 등이 주를 이뤘다. 주요 행선지는 미국이나 캐나다였다. 65년 미국이 이민법을 개정해 아시아인에게도 이민 문호를 열자 더 활성화된다. 62년 이후엔 유럽과 중남미로 떠나기 시작했다. 63년부터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볼리비아 등 남미로 농업 이민자가 많이 갔다. 유럽엔 독일이 주요 이주 거점이었다. 63~77년 사이 약 5300명의 광부와 1만여 명의 간호사가 독일로 갔다.

 중동 특수가 한창이었던 80년대엔 중동이 주무대였다. 97년 외환위기 이후엔 캐나다·호주·뉴질랜드·동남아시아로 가는 ‘경제 이주’가 등장했다. 고학력 전문기술직 종사자를 우대하는 이들 국가로 고용이 불안한 30대 이상의 가장들이 나라를 떠났다. 2000년대 들어선 동남아시아와 중국으로의 이주가 두드러진다. 최근 이민 양상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많은 사람이 한국에서의 경력과 자금을 바탕으로 사업과 투자를 하러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130여 년 동안은 식민지 지배와 전쟁 등으로 생긴 가난을 피해 쫓기듯 고향을 떠났다. 이제는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거나 삶의 여유를 찾기 위한 이주가 늘고 있다.

◆의견 내주신 전문가들(가나다순)=구동본 세종학당재단 부장,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이사, 김동준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장, 김영희 무역협회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장, 남장현 세계한인무역협회 팀장, 박종민 코이카 월드프렌즈 총괄팀장, 박현길 이노비즈협회 일자리창출팀장, 우재룡 한국은퇴연구소장,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명룡 전 대한은퇴자협회장, 최숙희 한양사이버대 교수, 한명규 코라오그룹 부회장

◆특별취재팀=김동호 선임기자, 염지현·이승호 기자, 김미진 인턴기자 hope.bantoi@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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