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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하 “도전과 반전, 그것만이 내 인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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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정준하가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공연장인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복도 바닥에 엎드려 마치 날아가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한 번 공연하면 몸무게가 2㎏ 줄어들 만큼 힘들다”면서도, 관객들의 박수 덕에 기운이 솟는 듯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개그맨 정준하(44)가 뮤지컬 무대에 섰다.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11월 8일까지 공연하는 창작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에서 그는 주인공 석봉 역으로 출연한다. 12일 낮 공연을 준비 중인 그를 분장실에서 만났다. 무릎에 아대를 차고 있어 걷기도, 앉기도 불편해 보였다. 그는 “리허설 때 동생 주봉이와 몸싸움을 하는 장면에서 무릎을 다쳐 오른쪽 무릎 인대가 절반쯤 끊어졌다. 병원에선 깁스를 하라고 했는데, 공연을 포기할 수 없어 임시로 고정시켰다”고 설명했다. “한 배역에 녹아들어 그 역할에 관객들이 몰입하도록 만들고 현장에서 박수를 받는다는 데 묘한 매력이 있다”는 게 그가 ‘부상 투혼’까지 발휘하며 무대를 고집하는 이유다.

 ‘형제는 용감했다’는 안동 이씨 종손집안 형제 석봉·주봉이가 아버지 부고를 듣고 3년 만에 고향에 내려와 유산 쟁탈전을 벌이는 이야기다. 유산을 찾기 위해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며 형제는 부모의 자식 사랑 흔적을 하나하나 찾아낸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 ‘그날들’의 장유정 연출이 만들어 2008년 초연했고, 이번이 일곱 번째 시즌이다. 정준하는 2009년에 이어 두 번째로 석봉 역을 맡았다.

 “2008년 정성화 주연일 때 보러갔어요. 첫 장면에서 ‘아이고, 아이고’ 하는 상갓집이 나오길래 ‘두 시간 어떻게 버티고 보나’ 걱정했는데, 10분 만에 ‘이 작품 대박’이라고 생각이 바뀌었죠.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잖아요. 2009년에 출연 제의가 와서 무조건 한다고 했죠.”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에서 검은색 상복을 입은 석봉 역 정준하(앞줄 왼쪽에서 둘째)와 주봉 역 정욱진이 안동 유림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이다. [사진 PMC프러덕션]

 그는 아직도 연습하며, 공연하며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극 중 아버지가 “무거운 종손의 의무는 나 혼자서도 충분해. 아들들아 너희는 훨훨 날아가라. 물 마르면 종갓집도 별 수 없다지”라며 우물에 흙을 퍼넣는 장면, 발길 끊은 아들들을 두고도 “한 놈은 착하고 바지런하고, 한 놈은 영특하고 총명하고…”라며 칭찬하는 장면 등에서 번번이 울컥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첫 공연하는 날 어머니가 다녀가셨대요. 저한테 말도 없이 혼자 티켓 사서 보고 또 말도 없이 가셨더라고요. 어머니야 늘 저한테 ‘잘한다’ 하시니까, 이번에도 그러셨죠.”

 그도 한때 부모에게 ‘속 썩이는 자식’이었다. “4수 끝에 대입을 포기했을 때 부모님 실망이 크셨다”고 했다.

 “중학교 때만 해도 전교 15등까지 했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어요. 하지만 목표의식이 없었죠. 대입을 포기하면서 ‘이제 내 인생 한번 살아보겠다’고 생각했죠. 스물두 살 때 방송국 들어가서 온갖 허드렛일 다 하며 무시도 많이 당했고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낀 적도 많았어요.”

 잘 알려진 대로 그는 이휘재·쿨 등 연예인 매니저로 활동하다 1995년 MBC ‘테마극장’ 카메오 출연을 계기로 연예계에 진출했다. 2004년 ‘노브레인 서바이벌’로 스타덤에 올랐고, 2006년엔 ‘풀몬티’로 뮤지컬 배우로 데뷔했다. 현재 ‘무한도전’(MBC), ‘내편 남편’(KBS2), ‘식신로드’(K스타) 등에 고정 출연 중이다. “모멸감을 느끼는 순간에도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생각했어요.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내 인생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들기 위한 엑스트라라고 생각했죠. 앞으로도 여러 장르에 도전하며 끝까지 주인공 ‘정준하’로 살 거예요.”

 최근 그는 ‘무한도전’ 무도가요제에서 힙합에도 도전했다. 그는 직접 노랫말을 쓴 ‘마이 라이프’에서 “내일모레 반백년 내 나이 마흔다섯, 반전의 모습 도전하는 나를 봐. 나는 앞으로 더 과감한 것들도 가능하지”라며 자신의 마음을 내보였다.

 그가 도전하려는 다음 꿈은 뭘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그는 “가정적인 남자”라며 “아이도 많이 낳고 싶다”고 했다. 그는 2012년 승무원 출신 재일교포 2세 여성과 결혼해 30개월 된 아들을 두고 있다. 그는 아내가 싸준 고구마 도시락을 꺼내 보여줬다. 껍질 벗긴 삶은 고구마가 한입 크기로 가지런히 들어있었다. “오늘 아침엔 아들과 기차 놀이를 했다”는 그는 진지하게 ‘아내 자랑’을 시작했다. “함께 있는 사람을 온순하게 만드는 사람이에요. 다른 사람들한테 친절하고 밝게 대하도록 만들어요. 그래서 저 결혼하면서 많이 변했죠.”

 그는 이미 충분히 가정적으로 보였다.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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