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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태양 개발 한창 … 물 쓰듯 전기 쓰는 시대 옵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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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호 12면

국가핵융합연구소 내에 설치된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KSTAR)의 외부 모습. 높이가 약 9m, 직경이 약 9m다. [사진 국가핵융합연구소]

영화 ‘아이언맨’과 ‘스파이더맨’, 그리고 끊임없이 달리는 ‘설국열차’에도 등장하는 핵융합에너지. 영화 속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꿈의 에너지’다. 게다가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해 지구온난화를 일으키지도 않는다. 원자력에너지(핵분열에너지)처럼 원전사고와 핵폐기물 처분 걱정도 없다.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이런 핵융합에너지 연구·개발을 한국 기술진이 주도하고 있다. 14~18일 제주도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제12차 국제핵융합기술 심포지엄(ISFNT)을 계기로 국가핵융합연구소(55·사진) 소장을 8일 대전 유성구 연구소에서 만나 핵융합에너지 연구개발 상황을 알아봤다. 김 소장은 국내 핵융합에너지 연구가 시작된 1970년대 말부터 30여 년 동안 이 분야에서 일해 온 세계적 전문가다.

김기만

-핵융합에너지의 정체가 뭔가. “태양이나 별에서 일어나는 반응이다. 지구상 모든 에너지의 근원인 태양에너지가 바로 핵융합에너지다. 수소(H) 원자핵 네 개가 뭉쳐 헬륨(He)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나온다. 이 융합 과정에서는 질량 손실이 일어나는데, 질량이 줄면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E=mc2에 따라 엄청난 에너지가 배출된다. 핵융합발전은 아주 작은 ‘인공 태양’을 만들고, 거기서 나오는 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해 사용하는 것이다.”


-핵융합에너지가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이유는.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 에너지를 생산하면 열이 나오게 마련이지만 화석연료에 비하면 미미하다. 화석연료의 경우 온실가스를 방출해 지구 기온을 상승시킨다. 핵융합에너지는 원자력발전과 달리 핵 사고 위험이 없다. 반응 조건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즉시 핵융합 반응이 중단되기 때문이다. 원전과 달리 고준위 핵폐기물도 나오지 않는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나오지만 반감기가 짧아 100년 정도 관리하면 문제가 없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경우 고준위 핵폐기물을 냉각시키지 못해 화재가 발생했는데, 핵융합은 그런 게 없으니 그 같은 사고가 나지 않는다.”


-핵융합에 필요한 원료는 충분한가. “중수소나 리튬 등이 필요한데 바닷물 속에서는 중수소가 무한정 들어 있다. 리튬도 마찬가지여서 무한 에너지로 쓸 수 있다. 핵융합 연료 1g은 석유 8t에 해당한다. 욕조 반 분량의 바닷물에서 추출할 수 있는 중수소와 노트북 배터리 하나에 들어가는 리튬의 양만으로도 한 사람이 30년간 쓸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핵융합에너지는 언제 상용화될 수 있나. “한국과 미국·유럽연합(EU)·러시아·일본·중국·인도 등 7개국이 공동으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연구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ITER에서는 각국이 예산을 분담하고 있는데 한국은 9%를 낸다. 총 12조원이 들어가는 이 사업은 2042년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프랑스 카다라슈에 실험로가 건설되고 있다. 설비와 건물의 안전성 검증 절차로 공사가 늦어지고 있지만 2020년께 완공되면 본격적인 실증 연구에 들어가게 된다. 각국은 독자적인 연구도 병행한다. 국내에서도 실증로 운영 연구를 진행하면서 ITER 프로젝트에서 나온 연구 결과까지 합치면 2053년 무렵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될 것이다. 우리 자녀들은 온난화나 오염사고 걱정 없이 핵융합으로 생산한 전기를 마음껏 쓸 수 있게 된다.”


-선진국들이 1950년대부터 연구했지만 상용화가 안 된 이유는. “1930년대에 핵융합 원리가 알려지고 1950년대 수소폭탄 제조 과정에서 핵융합이 본격 연구됐다.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플라스마 상태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1억 도가 넘는 초고온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야 한다. ‘토카막(Tokamak)’이라고 불리는 핵융합 장치가 가장 앞선 장치인데, 자기장을 이용해 플라스마를 모아 놓는 기기다. 핵융합에너지를 전력으로 바꾸는 설비도 개발해야 한다. 전 세계 전문가들은 이번 제주 심포지엄처럼 2년마다 모여 핵융합 장치의 연구개발을 집중 논의한다. 상용화 시기는 결국 투자와 직결돼 있는데 아직은 화석연료나 원자력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해 핵융합에 대한 집중 투자가 충분하지 않다.”


-상용화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려면 1억 도 이상의 고온 상태가 유지돼야 한다. 또 원자핵과 전자 껍질이 분리된 플라스마를 장시간 유지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초고온에서 견디는 재료도 개발해야 하고, 핵융합에너지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동력 변환 기술도 개발해야 한다.”


-한국의 핵융합 연구개발 상황은. “1995년 5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KSRAR) 설치를 시작해 2007년 완성했고 2008년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KSTAR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핵융합 연구 장치로 국가핵융합연구소 내에 설치돼 있다. 한국 연구진은 가장 진보된 KSTAR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경험을 쌓았고, 운영 과정에서 훌륭한 연구 성과도 확보했다. KSTAR 덕분에 후발 주자인 한국이 ITER 사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한국은 KSTAR 운영을 통해 선진국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과학적 난제들을 해결해 내고 있다. KSTAR는 4000만 도까지 온도를 높인 경험이 있고, 지난해에는 플라스마를 45초 이상 유지했다. 세계 최장 기록이다. 그동안 ITER 사업에 예산을 쏟는 바람에 자체 연구가 다소 주춤했는데, 2018년 이후에는 실험로의 온도를 1억 도 이상으로 올리는 한 단계 높은 연구가 진행될 것이다.”


-국가핵융합연구소 규모는. “직원은 370명이다. 행정과 시설관리직이 120명이고, 실제 핵융합 연구인력은 250명이다. 연간 예산은 1800억원 정도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은 ITER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ITER 프로젝트에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한국의 KSTAR는 ITER사업의 파일럿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은 ITER 프로젝트 참여 국가 중에서 필요한 부품을 최초로 납품한 나라다. 지난해 11월 초전도 도체를 납품했고, 미국에서 납품한 변압기도 국내 현대중공업이 만든 것이다. 빨리 만들었기 때문에 최초로 납품한 게 아니라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어서 최초로 납품한 것이다. ITER 사무국에도 한국 연구진이 30여 명 파견돼 있고, 최근에는 국가핵융합연구소 이경수 박사가 IETR의 랭킹 2위 자리인 기술총괄 사무차장에 선임될 정도로 한국인이 ITER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다른 참여국들이 발주한 부품 가운데 3000억원어치 정도를 국내 기업들이 수주했다.”


김기만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를 나와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 아르곤국립연구소와 삼성중공업 중앙연구소,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일했다. 국가핵융합연구소의 핵융합실증로(DEMO) 기술연구부장을 거쳐 지난해 11월부터 소장을 맡고 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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