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만에 햇빛 본 레닌동상의 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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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된 레닌 동상의 머리 부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이끌었던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의 거대동상 일부가 34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국 러시아가 아니라 독일에서다.
BBC 등 유럽 언론들은 11일 레닌의 거대동상 머리 부분이 독일의 옛 동베를린 인근 쾨페닉 숲에서 발굴됐다고 보도했다. 발견된 레닌 동상의 머리 부분은 길이 1.7m, 무게는 3.9t에 달한다. 1970년 동베를린 프리드리히스하인의 옛 레닌광장에 서 있던 19m짜리 동상의 일부다. 우크라이나산 붉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동상은 ‘사회주의 동독’의 상징물이었다.

독일 통일 이후 동상은 철거됐다. 거대한 레닌 동상의 머리 부분이 헬기로 옮겨지는 장면은 통일의 상징적 순간으로 기억된다. 해체된 동상은 129개 조각으로 나뉘어 쾨페닉 숲 여기저기에 버려졌다. 동상이 서 있던 광장 이름도 ‘유엔 광장’으로 바뀌었다.

잊혔던 레닌 동상이 세상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건 최근 베를린의 과거 기념물을 전시하기 위한 움직임 덕분이었다. 전시회 준비 측은 베를린 당국에 레닌 동상이 버려진 장소를 문의했지만 ‘정확한 장소가 기록되지 않았고 발굴 재원도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레닌 동상의 전시를 두고 독일 내에서도 논란이 거셌다. 냉전시대 유물을 전시해 이념 논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는 측과, 과거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측이 맞섰다. 하지만 슈판다우 구(區)가 역사적 의미에 무게를 두면서 발굴에 힘이 실렸다.

34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레닌 동상의 머리 부분은 조만간 복원작업을 거쳐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슈판다우 구 측은 “동상의 귀 부분이 손상된 것을 제외하면 상태가 나쁘지 않다”고 밝혔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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