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경제 view &

임금피크제는 정년 연장 디딤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경제선임기자

심각한 조로 증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노동개혁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이를 둘러싼 갈등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혼란이 임금피크제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동상이몽이다. 정부는 여기에 과도한 기대를 걸고 노동단체는 무작정 회피하려고만 한다. 이런 혼란에서 벗어나려면 임금피크제의 본질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연장과 떼놓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정년연장이 추진되지 않았으면 임금피크제는 사실 논의할 이유가 없다. 당초 정해진 대로 임금을 받다가 정년을 마치면 된다. 그런데 내년부터 정년 60세가 시행되면 새로운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 지금은 근로자의 평균 퇴직연령이 57세를 갓 넘기는 것으로 돼 있는데 실질 퇴직 연령은 53세를 겨우 넘긴다. 이런 상황에서 정년이 늘어나면 기업은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인력 조정이나 임금 조정 외에는 대안을 찾기 어려워진다. 이 가운데 근로자에게 유리한 길은 무엇일까.

 우리와 임금 체계가 비슷하지만 더 합리화된 일본을 보자. 일본은 2013년부터 정년을 65세로 연장했다. 그런데 철저히 시장원리가 작동된다. 임원이 아닌 근로자는 통상 55세가 되면 직역정년에 도달해 임금이 ‘피크’에 오른다. 이후에는 급여가 통상 80% 안팎으로 떨어진다. 대개 60세 정년을 채우지만 일부는 조기퇴직해 인생이모작에 나선다. 60세를 넘기고도 근로를 희망하면 기업은 65세까지 고용해야 한다. 2013년부터 도입돼 2025년에는 전면 시행된다. 그런데 무조건 정년연장은 아니다.

 일본 정부는 기업에 선택권을 줬다. 정년연장·정년폐지·계속고용(재고용) 셋 중에 하나다. 어느 걸 택할지는 개별 기업이 노사 자율로 정한다. 상당수 기업은 재고용 방식을 채택했다. 이를 통해 근로자는 전일제 외에도 매주 3~4일 출근, 하루 4시간 근무 같은 탄력적 고용형태로 취업한다. 임금은 55세 대비로 통상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정년연장이 일률적 근무연장을 의미하지 않고 고령자 특성에 맞춘 새로운 직무 부여와 임금조정이 뒤따른 결과다.

 이 결과 일본에선 정년연장에 따른 충격이 없다. 고령자와 장년과 청년이 조화롭게 더불어 일하고 있다. 선배는 기술과 경험을 전수하고 후배는 이를 통해 일본의 싱싱한 산업전사로 성장한다. 기성세대는 노후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대졸자는 졸업도 하기 전에 기업이 입도선매 방식으로 쟁탈전을 벌여 데려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 대졸 취업희망자의 취직률이 97%를 기록한 배경이다.

 한때 연공서열과 종신고용으로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노동시장으로 분류됐던 일본에도 시장원리가 살아 있다는 점이 한국에 던지는 교훈은 크다. 청년고용이 잘 되는 배경을 경기 활성화에 불을 댕긴 아베노믹스의 결과로만 보는 것은 피상만 아는 거다. 국내 노동단체가 주장하는 정년연장의 환상, 정부가 노동개혁의 만능열쇠처럼 여기는 임금피크제가 알고 보면 하나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작동한다는 걸 이해해야 비로소 노동개혁의 출발이 가능하다.

 노동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그간 내놓은 대책은 미덥지 않다. 노동개혁의 상징처럼 알려지고 있는 임금피크제는 정년연장의 디딤돌에 불과하다. 근본적 해법은 중소기업 육성에서 찾아야 한다. 중소기업은 만성적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재수해서라도 대기업과 공공부문에만 지원자가 몰리고 중소기업은 청년이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제대로 된 진단과 개입이 필요한 이유다.

 우선 인재가 넘쳐나는 여성이 취업하고 싶은 중소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지역별 연합 직장어린이집을 정부 재정으로 설치해주고 출산휴가 기간 중 급여는 재정에서 지출하도록 하자. 남성에게는 중소기업 취업 병역특례를 신설해 졸업 후 취업을 약속하면 복무기간을 과감하게 단축해주는 제도를 도입하자. 이런 식으로 지원하면 중소기업에 젊은 인재들이 몰려들어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와 청년 실업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파격적 조치와 발상의 전환 없이는 근본적인 노동시장 개혁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김동호 경제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