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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깡 낚아채는 갈매기, 셔터 속도 빨라야 선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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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갈매기를 우습게 보다 큰코다쳤다. 지난달 중순 강화도에 딸린 석모도에 들어갈 때였다.

week& 커버 사진으로 석모도로 가는 배에서 갈매기를 찍기로 했다. 석모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인데다 역동적인 장면을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새우깡 5봉지를 샀다. 갈매기를 유인하기 위한 미끼였다. 배가 선착장을 떠나자 갈매기들이 새우깡을 보고 달려들었다. 그 순간을 찍기 위해서는 갈매기가 어느 방향에서 날아오르는지 살피는 게 중요하다. 빛의 방향이 역광이 되면 하늘이 하얗게 나오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갈매기를 촬영하기 위해 배 오른편으로 이동했다. 다행히 갈매기들이 내가 의도한 방향으로 따라와 주었다. 새우깡 덕분이었다.

내 옆에서 한 가족이 새우깡을 던져줬다. 갈매기들이 허공의 새우깡을 향해 일제히 날아들었다. 그 가족에게 갈매기 유인 작전을 맡기고, 나는 셔터를 눌렀다. 셔터 스피드 1/640초에 조리개 f8 정도면, 선명하고 역동적인 갈매기 이미지를 만들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촬영을 마치고 숙소에서 확인한 사진은 실망스러웠다. 갈매기들은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날고 있었고, 순식간에 이리저리로 방향을 전환했기 때문에 여러 마리가 선명하게 나온 사진이 많지 않았다.

고정된 카메라 앞에서 피사체가 움직이는 경우, 셔터 속도가 느리면 흐릿한 상이 찍힌다. 셔터 속도가 빨라야 움직임을 멈춘 듯한 선명한 사진을 만들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원리이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다. 셔터 속도가 정확히 얼마나 빨라야 움직이는 물체를 선명하게 촬영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좌우로 움직이는 물체와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는 물체는 똑같은 셔터 속도를 적용해도 다른 결과물을 만든다. 그러므로 셔터 스피드와 조리개를 다양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특별한 비법은 없다. 상황에 따른 감을 믿어야 한다. 많이 찍다 보면 요령이 붙는다.

이튿날 다시 갈매기를 만났다. 이번에는 흔들리는 갈매기가 한 마리도 없었다. 셔터 속도를 1/1000초에 맞추고 조리개를 f16에 놓았더니, 생생한 움직임이 포착된 갈매기를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행착오를 거쳐 어렵게 만든 이 갈매기 사진은 아쉽게도 week& 커버에 실리지 못했다. 남북관계가 급박해지면서 교동도 철책선 사진으로 교체됐다. 2017년에는 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삼산연륙교가 완공된다고 한다. 그때가 되면 석모도 명물 새우깡 먹는 갈매기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과자를 받아먹는 갈매기들이 안쓰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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