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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이회창 대세론' 닮아가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때 ‘박근혜 대세론’을 연상케 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지지율이 ‘이회창 대세론’을 닮아가고 있다. 그간 미국 언론을 장식했던 ‘클린턴은 필연’이라는 수사는 사라지고 급기야 ‘클린턴 피로증(Clinton fatigue)’이 등장했다. 대세론 붕괴를 알리는 정치 용어가 ‘피로증’이다.

갤럽의 지난 7일(현지시간) 발표에 따르면 클린턴 전 장관에 대한 호감도는 41%로 1992년 조사 이후 사실상 최저치다. 공화당 주자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측은 지난달 말 ‘클린턴 피로증’을 내건 TV 광고로 공세에 나섰다. ”미국은 클린턴 피로증에 걸려 있다”며 “똑같은 낡은 생각, 낡은 정치, 낡은 개인적 치부에 미국이 지쳤다”고 공격했다. CNN은 미국 대선의 풍향계인 일리노이주ㆍ뉴햄프셔주의 유세 현장 분위기를 전하며 “뭔가 신선함을 원하는 욕망이 팽배한 데 클린턴 전 장관은 아직 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며 “클린턴 전 장관에겐 정말 심각한 도전”이라고 경고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번이 대선 재수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돌풍에 밀려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했다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를 통틀어 1등 지지율을 지켜오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 물론 내부의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에게도 뒤지고 있다. 이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부동의 1위였다가 패배한 뒤 2002년 대선에서도 초반의 여론 우위를 살리지 못했던 이회창 대세론을 연상케 한다.

클린턴 전 장관의 위기는 경쟁 없이 안주하는 대세론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민주당은 클린턴 전 장관의 독주로 경선 초반 흥행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반면 공화당은 막장 후보 트럼프가 뛰어들며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달 6일 폭스뉴스가 생중계한 공화당 후보들의 첫 TV 토론회는 2400만명이 시청해 기존의 경선 토론회 시청 기록을 갈아치웠다. 오는 16일 공화당의 2차 TV 토론회를 주관하는 CNN은 토론회 광고 단가를 40배 인상했다. 평소 저녁 시간대 30초 광고비가 최저 5000달러(약 600만원)였는데 이번엔 20만 달러(2억4000만원)를 불렀다고 뉴스맥스 등이 전했다.

2002년 한국에서도 민주당의 광주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승리한 뒤 ‘노풍(盧風)’을 만들며 이회창 대세론에 제동이 걸렸다. 물론 트럼프가 공화당의 최종 대선 후보가 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그의 막말 캠페인은 변화를 내걸었던 노풍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반대 진영의 대세론을 휘청거리게 만든 효과에선 동일하다.

2002년 이회창 후보는 민주당이 제기한 병역 의혹 등에 상처를 받으며 대쪽 총리의 이미지를 상실했다. 클린턴 전 장관도 현재 병풍에 버금가는 위기를 맞고 있다. 고액 강연료 논란과 클린턴 재단의 문어발식 후원금 수수로 상처가 누적됐다가 국무장관 시절 개인 e메일을 공무에 사용했다는 공화당의 의혹 제기로 신뢰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7일 “중앙정보국(CIA)과 국립지질정보국(NGIA)은 클린전 전 장관이 두 개의 개인 e메일로 받은 내용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관련 내용을 포함해 ‘최고 기밀’이 담겼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는 e메일을 저장했던 개인 서버가 외부 해킹에 뚫리면 국가 기밀이 유출됐을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폭발력이 만만찮은 사안이다. 그럼에도 클린전 전 장관은 이날 “(개인 e메일은) 국무부로부터 허가를 받고 사용했다”며 사과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여론은 비판적이다. 지난달 28일 발표된 퀴니팩 대학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클린턴 전 장관과 함께 연상되는 단어로 거짓말쟁이(liar), 정직하지 않다(dishonest), 믿을 수 없다(untrustworthy)가 상위 1·2·3위를 차지했다. 클린턴 전 장관의 강점인 경륜(experience), 강함(strong), 똑똑하다(smart)는 그 이후로 밀렸다.

◇크루그먼, 트럼프 경제 공약 옹호=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7일 ‘경제학에선 트럼프가 옳다’는 칼럼을 NYT에 실었다. 그는 트럼프가 부자 증세를 거론하는데 대해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비판하자 “감세로 미국 경제성장률을 두 배로 올리겠다는 것은 공급자 편향적인 맹신”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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