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해 다시 강슛 … 함께 뛴 축구 ‘장그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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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챌린지 신생팀 서울 이랜드와 아마추어 ‘미생 팀’ 청춘FC의 경기. 저마다의 사연을 가슴에 간직한 청춘FC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쓰러진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뛰어 팬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사진 이랜드]

1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축구계의 두 ‘미생(未生·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 있지 않은 상태를 일컫는 바둑 용어)’이 만났다.

K리그 챌린지(프로 2부리그) 신생팀 서울 이랜드와 최근 공중파 방송에서 인기몰이 중인 축구팀 ‘청춘 FC 헝그리 일레븐(이하 청춘 FC)’이 친선경기를 가졌다. ‘프로’와 ‘아마추어’라는 위상 차이는 컸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과 도전 정신은 우열을 가늠키 어려웠다. 양 팀 선수들은 자신을 위해, 그리고 서로를 위해 시종일관 전력을 다해 맞부딪쳤다. 이랜드의 3-2 승리. 그러나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년 시즌 K리그 클래식 승격에 도전 중인 프로팀 이랜드가 방송용 아마추어 축구팀의 친선경기 제의를 수락했을 때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승리는 당연하다. 비기거나 질 경우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며 만류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부상자라도 나오면 팀 운영에 애를 먹게 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조언도 있었다.

 마틴 레니(40) 이랜드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청춘 FC의 스토리를 잘 안다. 시련을 겪고 좌절했던 선수들이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돕는 것만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이랜드도 아직 완성된 팀은 아니지 않느냐”며 청춘 FC의 손을 흔쾌히 잡아줬다. 청춘 FC 멤버 중 수비수 염호덕과 허민영은 이랜드 창단 당시 입단 테스트에 참여했던 선수였다. 이랜드는 2군 선수들로 라인업을 꾸렸지만 최선을 다하는 경기로 관중석을 가득 메운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벤치에 앉아 있던 이랜드 주포 주민규(25)는 경기 내내 말 없이 그라운드를 응시했다. 후반전 도중 만난 그는 “어느 경기보다도 가슴 속 울림이 크다”고 했다. 올 시즌 K리그 챌린지 무대에서 득점 선두(18골)를 질주하며 ‘최고 히트상품’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그에게도 도전과 시련의 순간이 있었다. 고양 HiFC 소속이던 지난해까지 주민규는 수비형 미드필더였다. 슈팅보다 태클, 드리블보다 몸싸움이 익숙했다. 골과 인연이 없다보니 주목 받지도 못했다. ‘프로 2부리그의 그저 그런 선수’였던 그는 시즌 종료 후 “공격수로 포지션을 바꿔 새출발하지 않겠느냐”는 레니 감독의 제의를 받고 고심 끝에 이랜드 유니폼을 입었다.

 주민규는 “당시에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공격수 제의를 수락했지만, 두려웠던 게 사실이다. 불의의 부상으로,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좌절을 겪은 청춘 FC 선수들을 보며 축구 인생을 걸고 도전했던 지난해 겨울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주민규는 “청춘 FC 수비수 김바른과 15세 이하 대표팀 멤버 일본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참가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당시 바른이는 축구계가 주목하는 유망주였다. 그의 플레이를 많이 따라했다”고 옛 추억을 떠올렸다. 이어 “축구선수로 살다보면 우여곡절이 많다. 때론 쉬어가야만 하는 순간도 있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것”이라고 옛 친구를 격려했다.

 레니 감독을 대신해 지휘봉을 잡은 김희호(34) 수석코치는 “청춘 FC 선수들이 생각보다 몸을 잘 만들어 왔다. 아찔한 순간이 많았다”면서 “봐주거나 대충 뛰는 건 축구 인생을 걸고 도전 중인 이 선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우리도 최선을 다해 싸웠고,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테리우스’ 안정환(39) 청춘 FC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훈련하고 경기한다. 축구 미생들이 가진 잠재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끝까지 돕고 싶다”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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